지난달 19일 국회 6층 환경노동위원회 소위원회의실. 3개월여 만에 열린 회의였지만 고성만 오갔다. 임이자 소위원장(자유한국당 소속)은 국회 본회의 일정부터 잡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고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상임위는 상임위대로 심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맞받아쳤다. ‘이번에는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및 선택근로제 정산기간 확대에 진전이 있을까’ 기대하며 국회에 온 관련 업계 종사자들은 빈손으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이후 지난 2일 본회의가 열렸지만 탄력·선택근로제 확대는 여전히 고용노동 소위 문턱조차 못 넘고 있다.
노동 4.0 시대로 세상은 자고 일어나면 바뀌고 있지만 법으로 밑바탕을 깔아줘야 하는 정치권은 관심도 갖지 않고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치권이 노동 4.0은커녕 2.0에서 3.0으로 바꾸는 입법조차도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탄력·선택근로제 개정은 제조업에 초점을 맞춘 근로기준법을 서비스업, 연구개발(R&D)의 특성도 고려해 일부 수정하는 것이다. 노동 4.0은 나아가 각 사업장 근로자 대표가 사측과 협의해 맞춤형 근로시간을 정하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전 단계로의 발걸음도 못 내딛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뿐만 아니라 우리 노동법 전반이 시대에 뒤처져 있다고 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파견법.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파견이 허용되는 업종은 32개이며 제조업 등 나머지는 인력 파견을 원칙적으로 금하고 있다. 반면 미국·독일·영국·일본은 제한이 없다. 기술이 너무 빨리 바뀌어 대기업도 이에 맞춰 인력을 양성하기에는 시간과 정보가 부족한 게 사실이어서 경쟁국은 파견근로를 적극 활용하고 있지만 우리는 제한에 걸려 있다.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요건도 문제다. 근로기준법 24조 1항에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한다’고 돼 있다. 여기서 ‘긴박한’이라는 것은 우리나라 사회 분위기상 회사가 무너지기 직전에 해고가 가능하다는 ‘사후적’ 성격의 것이라는 게 대다수 전문가의 견해다. 미국·영국 등 경쟁국은 유연한 고용체계와 탄탄한 사회안전망을 무기로 경제 변화에 해고와 적재적소로의 재취업을 돕는 방식으로 적극 대응하고 있는데 우리는 한번 정규직을 고용하면 변화를 줄 수 없어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이외에 비정규직보호법(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법률)도 고용기간 2년을 초과하지 못하게 했는데 역설적으로 이 조항으로 인해 2년마다 직장을 바꿔야 하는 근로자가 많아 오히려 고용 안정성이 약화되고 있으므로 기한을 늘리거나 아예 제한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의 노동시장 규제는 2000년 58위로 독일(74위)보다 규제 정도가 약했지만(프레이저인스티튜트 발표) 가장 최신 자료인 2016년 162개국 중 143위로 최하위였다.
우리 노동법이 시대 역행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손을 대는 순간 노사 양측으로부터 압박을 받기 때문에 표에 민감한 국회의원 중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사람은 없다”며 “오죽하면 헌법보다 바꾸기 어려운 게 노동법이라는 말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해고 요건 중 ‘긴박한’ 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법안을 20대 국회에서 발의한 국회의원은 한 명도 없었다. 파견법 허용 업종을 넓히는 법안은 2016년 새누리당(옛 자유한국당)이 당론 발의했지만 3년 넘게 논의조차 안 되고 있다.
해법은 없을까. 파견근로제의 경우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지 말고 순기능도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예를 들어 대형 프랜차이즈 빵집이 제빵사를 파견근로를 통해 쓰는 경우 이들이 파견근로 기간이 끝나고 경쟁력 있는 자신의 빵집을 차리는 경우도 많다. 파견근로제가 없었다면 이들이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기회의 문조차 좁아질 수 있었으므로 무조건 부정적으로 보기보다 순기능도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부적으로 생명·안전 관련 업종만 파견근로를 제한하고 나머지 업종에 파견근로를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고용 유연화가 ‘쉬운 해고’라는 프레임 주술에 걸려 있다”며 “현 상태라면 경쟁국에 우리만 뒤처지게 되는 것이므로 ‘앉아서 당하기만 할 것인가’라는 말로 쉬운 해고 프레임을 깨야 한다”고 제언했다. 노동법 개정은 결국 노동계 반발을 뚫고 나가는 게 핵심이고 사회갈등 조정은 정치의 영역이므로 정치권이 총대를 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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