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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통 후카가와 교수 "징용공은 日 레드라인…위안부·교과서와 달라"

■본지 인터뷰서 밝힌 '日 경제보복'

"현지 여론 90%정도가 지지

아베 정권만의 문제가 아냐

8·15에 韓 '감정적 연설'땐

양국 완전 미지의 영역갈 것"





“징용공 문제는 일본의 ‘레드 라인(양보하지 않으려는 쟁점)’입니다.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강화는 타협은 없을 것이라는 일본의 메시지입니다.”

일본의 대표적 ‘한국통’ 학자인 후카가와 유키코 와세다대 정치경제학부 교수는 지난 12일 서울경제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수차례 ‘레드 라인’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그만큼 일본 정부가 단호하게 대(對)한국 수출규제 강화 보복에 임하고 있으며 한일 갈등의 출구를 찾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얘기다. 후카가와 교수는 “오는 18일 제3국 중재위원회 구성 시한을 넘기고 8월15일에 매우 감정적인 (한국 측) 연설이 나오면 그 무렵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에서 한국이 제외될 것”이라며 “그 이후는 완전한 미지의 영역이다. 한일 양국은 지금 예측할 수 없는 매우 위험한 게임을 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정부가 과거사 문제를 빌미로 일본 스스로에도 부담이 될 경제보복에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후카가와 교수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는 “한국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일본으로서는 놀라운 일”이라며 “징용공 문제는 교과서나 위안부 문제와는 완전히 다른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과 달리 일본은 감정이나 정의가 아니라 기본적으로 ‘법’에 의해 움직인다. 국제법으로, 조약으로 결정된 징용공 문제는 일본 국민 대다수의 컨센서스가 형성된 절대적 레드 라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 여론의 90% 정도가 이러한 입장을 지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韓日, 접점없는 종교인·법률가 싸움

美가 해결해줄거란 발상은 잘못돼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과 관련해 21일 참의원선거를 앞둔 아베 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서도 그는 “이것은 아베 정권의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누가 정권을 잡았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며 완강히 부인했다. 후카가와 교수는 “일부 의원들이 북한으로의 물자 유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선거를 앞둔 무리수 차원으로 해석되지만 북한 관련 의혹이 정식으로 제기된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지금의 한일 갈등 상황은 그래서 더 심각하다고 후카가와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한쪽은 감정과 정의, 다른 한쪽은 법밖에 없는 지금의 이 갈등은 마치 종교인과 법률가의 싸움처럼 출발점부터 접점이 없다”며 “이대로라면 출구가 없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아직도 미국에 부탁하면 어떻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발상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제기되는 ‘1+1+α(한국·일본 기업 출연금에 더해 한국 정부가 피해자 지원)’ 타협안에 대해서도 후카가와 교수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미 한국 정부는 신뢰를 잃었다는 것이다. ‘골대가 움직이는 상황’을 수차례겪은 일본으로서는 “이번 제안을 받아들인다고 해도 한국 정부가 향후 또 같은 문제를 들고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고 후카가와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앞서 한국 정부가 ‘1+1(한·일 기업 출연금으로 피해자 지원)’ 안을 제안한 것을 두고도 “얼마 전까지도 비상식적이고 의미 없다고 주장했던 기금안을 스스로 들고 나온 것을 보고 과연 한국 정부가 이 사안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기는 한 것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일본의 반응”이라고 말했다. 한국 정부가 올 1월 한일 양국 기업과 한국 정부가 참여하는 기금 조성안에 대해 “비상식적”이라고 일축했다가 변형된 기금 조성안을 들고 나온 것을 꼬집은 것이다. 후카가와 교수는 “우선 한국 내에서 컨센서스를 형성한 뒤 일관성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움직이는 골대’에 日서 한국 정부 신뢰 잃어



좀처럼 화내지 않는 日 분노..대화 시간 걸릴 것

韓 우선 컨센서스 형성하고 일관성 가져야

현재로서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에서 시작된 이번 사태가 어디까지 번질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후카가와 교수는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이 제외된 후 또 다른 보복조치가 나올 가능성에 대해 “아마 일본 정부도 이후의 카드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며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화이트리스트 자체가 매우 강력한 카드이며 일본 정부도 이런 것까지 쓰고 싶지는 않을 것”이라며 “상황을 지켜보며 단계적으로 카드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반도체 소재를 국산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데 대해서도 그는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한국 경제에 정통한 후카가와 교수는 “한국은 적어도 지난 20년 동안 그 얘기를 해왔지만 하지 않았다. 삼성이 돈이 없어서 안 했겠느냐. 경제성이 없어서 안 한 것”이라며 “반도체 소재 국산화 얘기는 저임금으로 일본을 따라잡겠다며 ‘극일(克日)’을 주장하던 1980년대의 사고방식”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인건비가 일본보다 비싸지고 온갖 규제와 강성 노조가 버티는 마당에 국산화를 어떻게 할 것이냐고 후카가와 교수는 반문했다. 다만 이번 사태가 우려만큼 기업에 큰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일시적으로 안정적인 공급이 이뤄지지 않을 수는 있지만 재고가 있고 투명한 절차를 밟는다면 크게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후카가와 교수는 “수출규제라는 한국 측의 표현은 왜곡된 것”이라며 “불확실성은 있지만 한국 기업들이 항상 직면하고 있는 정책적 불확실성 정도의 압력”이라고 덧붙였다.

한일 간 쌓아 온 자산은 무시 못해…후퇴해도 다시 나아갈 것

韓 외교·경제영역서 정치 비중 너무 커…전문가들 믿어라

결국 관건은 평행선을 걷는 한일 정부의 출구 찾기다. 후카가와 교수는 “일본이라고 언제까지나 이 상태를 이어갈 수는 없다”면서 “지금 일본인으로서 한국 정부에 바라는 것은 ‘일관성’을 가져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역사에 ‘하루아침’이란 없다. 역사 문제를 당대 정권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교류를 확대하며 긍정적인 부분을 조금씩 쌓아나가지 않으면 감정론의 출구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일본인은 대인관계에서 좀처럼 화를 내지 않지만 한번 화를 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후카가와 교수에 따르면 지금 일본은 분노한 상태다. 따라서 대화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까지 쌓아온 양국 관계가 갑자기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후카가와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양국 간에 수십 년 동안 쌓아온 자산이 반년 만에 ‘제로’가 되지는 않는다. 한국은 ‘플로(flow)’를 생각하지만 선진국은 ‘스톡(stock)’을 생각한다”며 “한일 관계에도 기업 간의 관계와 인적 교류 등 스톡이 있다. 지금 상황이 나빠서 일부 후퇴할 수는 있지만 다시 해나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후카가와 교수가 한국 정부에 당부한 말은 “한국의 전문가들을 믿어달라”는 것이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이코노미스트를 믿어야 하듯이 대일 관계에 있어서도 지금껏 일본과 교섭을 해온 전문가들의 노력을 아무 대책도 없이 망가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후카가와 교수는 “한국은 경제나 외교 분야에서 정치의 비중이 지나치게 크다. 게다가 그 정치가 국민들의 안색만 살피는 포퓰리즘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며 “국익을 우선시한다면 한국과 일본이 함께할 일은 너무나 많다. 끈질긴 대화를 통해 무너진 신뢰를 다시 쌓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경립 국제부장 kls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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