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300인 이상 사업체에 대해 주당 최장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됐다. 이달부터는 노사 합의가 있으면 예외를 인정받던 26개의 특례업종 중 운송 및 보건업을 뺀 21개 업종이 제외됐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업을 포함하는 거의 전 업종이 주 52시간제의 적용을 받게 됐다.
근로시간 단축은 두 가지 희망적 기대하에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첫째는 삶의 질 향상이다. 소위 ‘워라밸’이 확산하고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구호가 대중에게 각인된 것과 궤를 같이한다. 둘째는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증가다. 불행히 정책효과는 둘 다 기대와 어긋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기업은 초과근로를 시키면 최소 50%의 할증료를 지불해야 하는데도 왜 시키는가. 계절성·납기준수, 기일 내 프로젝트 완수 등의 이유로 특정 기간에 일을 몰아서 할 필요가 있어서거나 구인난으로 일손이 부족해서이기도 하고 보다 중요하게는 사람을 새로 쓰면 근로시간과 관계없이 사람당 지출해야 하는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근로자를 고용한 기업은 채용비·훈련비뿐 아니라 각종 법정부담금을 포함하는 월 급여의 30%에 해당하는 부가급여를 지불해야 한다. 해고가 어려운 제도적 환경에서 해고비용도 상당히 크다. 이 때문에 추가 채용 대신 기존 인력을 초과근로 시키는 게 비용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근로자 쪽에서는 상시적인 초과근로를 하는 일자리에는 장시간 일하더라도 높은 소득을 받는 것이 유리한 사람들이 남아 있다.
이 상황에서 근로시간의 강제 감축은 기업 비용을 상승시키고 근로소득을 감소시킨다. 공공 부문, 노조 부문 등 임금 삭감 없는 근로시간 단축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소수를 빼고는 오히려 생활 수준이 내려간다는 뜻이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고용비용 증가는 기계로의 노동 대체, 기업 해외 이전 등을 촉진해 노동수요 자체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 당연히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고용증가는 기대하기가 어렵다. 오히려 총노동시간의 감소로 생산과 고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런 맥락에서 골드만삭스는 이 제도가 성장률을 내년에 0.3%, 중소업체로 확대 적용되는 후년에 0.6% 낮출 것이라는 추정을 내놓았다.
생산성과 소득이 오르면 장시간 근로는 자연스레 줄어든다. 실제 우리 경제에서 진행돼온 일이다. 근로시간의 획일적인 제한은 기업 할 자유, 근로의 자유를 제약한다. 최저임금을 높이 설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경제에 대한 국가주의적인 통제로서 경제활동을 위축시키고 생활 수준을 낮춘다.
심지어 이 제도는 근로시간 포함이 불분명한 활동이 많은 현실에서 위반에 대해 징역형을 부과할 수 있게 해 기업가들을 잠재적 범죄자 집단으로 만들고 있다. 피해자 없는 경제활동에 대한 강한 처벌은 국가가 과도하게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지 말라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반한다는 생각이다.
주 52시간제는 형사처벌 완화, 탄력근로 확대의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 장시간 근로 시 재해나 사고 위험이 증가하는 업종에 적용을 엄격히 제한해야 한다.
특히 정보기술(IT)·바이오 업종을 포괄하는 연구개발업을 예외로 두는 일이 시급하다. 어느 선진국에도 없는 이 업종에 대한 근로시간 규제는 1분 1초가 중요한 연구성과 및 신제품개발 경쟁에서 우리를 뒤처지게 하고 성장 잠재력을 크게 훼손한다. 스마트폰 혁명 때 한 대기업 연구원들이 몇 달간 밤낮없이 일해 제품개발에 성공함으로써 경쟁자들이 도태되는 가운데 그 기업을 스마트폰 강자로 세운 것과 같은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이 업종을 특례업종에 포함하거나 미국과 같이 전문직·관리직, 일정 수준 이상의 연봉자 등에 대해 초과근로수당 지급의무를 면제하는 ‘화이트칼라특례제(white collar exemption)’를 도입하는 것이 긴요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