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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지금은 민간주도 혁신시대… 정부가 간섭하면 '4차산업' 성공 어려워"

<이장우 혁신경제 공동대표>

실험·실패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걸림돌...희생 감내해야

혁신은 진보·보수 없는 생존의 문제...과감한 결단 필요

대기업 M&A 나설 여건 조성·엔젤투자에 획기적 조치를

하향식 소통 구조 고집하면 한국경제 미래는 장담 못해





이장우 공동대표는 혁신경제를 살리자면 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 규제로 손발이 묶인 신산업의 활로를 뚫어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를 위해 창업자들이 사회에서 존경받는 분위기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호재기자


“미래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정책이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겸손하지 않은 정책이 남발되는 것은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피를 말리는 과정을 거쳐야 혁신적이고 새로운 정책이 나오게 마련이지만 지금 정부의 정책은 그런 게 없이 그저 무지개를 좇는 것들이어서 안타깝습니다.”

이장우 사단법인 혁신경제 공동대표(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무엇보다 민간의 창업생태계가 살아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많이 도전하고 시행착오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공동대표와의 인터뷰는 최근 서울 서초구의 성공경제연구소에서 2시간에 걸쳐 진행됐다.

-정부가 혁신성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제자리를 잡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혁신의 길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간이 혁신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과거에는 세상에 이미 존재했던 혁신이기 때문에 정답이나 성과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부가 끌고 갈 수 있었던 측면이 존재했다. 하지만 지금은 철저하게 민간이 혁신을 주도하는 시대다. 세상에 없는 혁신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극복하는 정책이나 경영전략이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정부와 기업이 성공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과거의 혁신방법을 답습하는 한 혁신을 이뤄내기는 어렵다.

―불확실성의 시대에는 정책이 과거와 달라져야 한다는 얘기인데.

△민간의 창업생태계가 살아나게 하려면 발상의 전환이 절실한 시점이다. 이제는 예산을 적게 투입하고도 더 좋은 성과를 이끌어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세제 혜택을 늘리고 사회적 존경을 받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제도적으로 보면 지금은 온갖 것들이 넘쳐나는 ‘성찬의 시대’다. 문제는 이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규제를 완화하면 때로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는데 이를 겁내고 피한다면 혁신은 불가능하다. 사회적 반대나 정치적 위험을 감수했을 때 제대로 된 친기업 환경이 만들어진다는 얘기다. 결국 혁신을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통합되고 새로운 시장이 출현하는 시대에는 정부가 이를 적극적으로 뒷받침하는 용기를 내야 한다. 다만 생선을 굽는 것처럼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만 해도 의도가 어떻든 현실을 무시하고 지나치게 이론에 매달리면서 각종 부작용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점은 무엇인가.

△우리 경제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우선 충분히 예측 가능한 위기도 돌파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이 중국에 의해 밀린다는 사실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위기를 위기라고 주장해야 돌파할 수 있는데 그래도 괜찮지 않느냐는 안이한 사고방식이 문제다. 두 번째는 예측이 어려운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기회에 대처하는 자세다. 미래 먹거리는 ‘거지인 줄 알고 지나쳤더니 백만장자였더라’는 식으로 어느 날 갑자기 다가올 것이다.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기회를 잡으려면 수시로 실험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갖가지 규제에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 신산업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팽배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먹고살 만하다 보니 기존의 성공 자산이 새로운 길로 나가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가진 게 많고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있다 보니 누구도 희생을 감내하지 않는다. 혁신에는 희생이 뒤따르게 마련이고 이를 뛰어넘는 정치적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산업 현장의 분위기가 그렇게 안 좋다는 건가.

△요즘 주변에서 괜찮은 공장이나 사업체가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쏟아져나온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벤처나 중견기업일수록 좋은 물건이 많다고 하더라. 평소 알고 지내던 제조업체 가운데 최근 3년 새 해외로 빠져나간 곳이 적지 않다. 대부분 베트남으로 건너갔다. 정부가 중점사업으로 추진하는 스마트 팩토리도 마찬가지다. 신산업에 도전하려면 투자비만 수십억원을 투입해야 하는데 위험을 떠안기를 주저하는 이들이 많다. 도전을 하기보다는 기업을 정리하려는 생각들이 많은 편이다. 혁신이 확산되기는커녕 기존 사업마저 계속 끌고 가야 하는지 주저하는 분위기다. 그게 바로 우리 기업가정신의 현주소다.

-그래도 벤처나 스타트업이 열심히 뛰고 있지 않은가. 해외 시장에도 많이 진출하고 있다.

△국내 여건이 어렵다 보니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역설적인 측면도 봐야 한다. 물론 우리 경제 규모가 그만큼 성장한 덕택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런 정도로는 혁신이 어렵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창업정책을 주도해 성공한 나라는 없다. 이제는 창업정책도 과감히 민간의 영역으로 내보내야 한다. 정부가 2조원의 자금으로 창업을 이끌어가고 있지만 민간에서 열정을 갖고 뛰어야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정부 예산이 투입되면 책임을 안 지는 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혁신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기가 어렵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정말 제한적이라는 사실을 빨리 깨달아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넛지(nudge)’ 같은 지혜가 필요하지 않겠나.

-기업가정신이 흔들린다는 우려가 높다. 과거와 비교하면 어떤가.

△경제주체들이 기업가정신을 실천해야 한다는 당위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다만 실제로 발휘하고 행동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창업이 활성화되려면 자본을 가진 대기업과 새로운 도전에 나서는 창업가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가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 두 부문의 균형을 못 찾을뿐더러 장점도 제대로 살리지 못하고 있다. 정책당국은 부인하지만 대기업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기업가정신의 한 축이 무너졌다. 사실 우리는 교육 수준이 높고 욕구체계나 능력도 갖추고 있어 창업의 기회는 훨씬 많아졌다. 정부가 10년 넘게 창업을 지원해왔지만 민간이 주도하는 창업생태계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호주의 경우 사업하다가 실패하면 세금 면제는 물론 자금까지 추가로 지원하는 등 실패를 대신 떠안아준다고 한다. 미국도 창업을 직접 지원하는 정책이 거의 없다. 시장과 자금을 풀어주면서 나머지는 민간이 다 알아서 하라는 식이다. 세상에 없는 혁신을 하는 데 정부가 나서면 제대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계가 부족하다는 얘기도 많다.

△혁신채널 가운데 중요한 것이 대기업이 마음 놓고 M&A에 나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대기업이 투자하면 계열사 편입 등 복잡한 문제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다. 엔젤투자도 정부가 나름 규제를 풀기는 했지만 더 획기적인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기껏해야 1억원을 지원금이라고 안겨주니 나머지는 어디서 구하겠나.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우리의 대응은 어떤가.

△인공지능(AI)이나 로봇으로 대변되는 기술변화가 미래를 바꾸는 4차 산업혁명기에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는지 생각해보면 매우 회의적이다. 산업화와 달리 예측불허의 불확실 시대에는 대응방식도 과거와 확연히 달라야 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실험과 시행착오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 정책도 실험과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다. 새로운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발을 붙이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 공유경제나 블록체인처럼 새로운 영역에 대해 우호적이지 않은 분위기가 대표적인 사례다. 결국은 자금과 사람으로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야 하는데 우리는 얼마나 준비하고 있는가. 정책자금만 해도 과거와 달리 위험을 회피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과연 국책은행들이 리스크 테이킹을 얼마나 하려고 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인재 공급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교육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새로운 두뇌 육성에 신경 쓰고 있나. 과연 자사고를 없애는 것이 4차 산업혁명에 도움이 되는지를 따져봤는지 묻고 싶다. 교육의 형평성 측면에서도 시늉만 할 뿐 전혀 바뀌는 게 없다. 기존 것을 바꾸려고 하면 안 된다는 규제만 시퍼렇게 살아 있을 뿐이다.

-우리 사회에는 진영논리가 팽배하다.

△진영이 딱 갈라져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경향이 강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혁신은 생존의 논리이지 진영의 논리가 아니다.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는 생존의 문제이기도 하다. 오로지 국가와 국민만 있을 뿐이다. 칼자루를 쥔 정책의 주체는 혁신에 실패하면 역사가 심판한다는 자세로 귀를 열어놓고 모든 얘기를 들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이론이란 있을 수 없다. 소득주도 성장을 지키려고 더 방어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창의적 대안을 수용하기 어렵다. 과거에는 엔지니어링식으로 설계도를 그려놓고 밀어붙이면 성과를 냈지만 지금은 깜깜한 불확실성 속에서 더듬더듬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하나라도 더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절실함이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 그런 절실함을 보여주지 못하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경제가 정치를 쥐고 흔드는 문제는 여전하다. 정치권의 각성도 절실한 시점인데.

△경제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선진국일수록 경제 문제에서는 하나로 똘똘 뭉친다. 이제는 나라가 망해도 이념을 지켜야 한다는 낡은 사고방식에서 과감히 벗어나야 한다. 혁신도 국가가 존재하고 국민이 생존해야 가능한 얘기다. 국민이 혁신의 주체라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정치권은 자신들의 정책을 통해 혁신이 일어나고 그 덕분에 국민이 먹고산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 지금은 국민이 혁신을 일으켜 국가가 잘살게 만드는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과거의 하향식 소통구조를 고집한다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다. 정상범 논설위원 ssang@sed.co.kr

이장우 혁신경제 공동대표 /이호재기자.


사단법인 혁신경제는… “진영논리 벗어나 한국 경제 갈 길 제시할 것”

지난달 중순 ‘혁신성장의 성과와 방향’을 주제로 열린 한 토론회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양준모 연세대 교수 등 토론자들은 혁신성장의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조목조목 비판하면서 민간 위주의 혁신생태계를 되살려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토론회를 준비했던 이장우 공동대표는 “주위에서 정부를 세게 비판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면서 “앞으로 진영논리를 벗어나 한국 경제의 바람직한 갈 길을 제시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혁신경제는 4차 산업혁명과 혁신성장의 비전에 공감하는 전문가와 기업인들로 구성된 민관협력 네트워크다. 민간 주도의 정책 생산과 유통을 통해 혁신활동을 지원하고 정책 입안을 뒷받침하는 개방형 정책 플랫폼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난해 초 출범한 후 그동안 10여차례에 걸쳐 세미나를 개최했으며 관련 분야도 블록체인부터 유니콘기업의 발전방향, 빅데이터 플랫폼, 글로벌 원유시장 등 폭넓다. 지난해에는 주한 미국대사관과 공동으로 ‘4차 산업혁명 시대 한미 협력의 새로운 기회’를 모색하는 기회를 가졌으며 블록체인협회 등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현재 이 공동대표와 함께 김준묵 이사장 겸 공동대표, 고진 공동대표가 활동하고 있으며 4차산업혁명·스타트업·규제개혁 등 6개 분과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이 공동대표는 “역사가 짧지만 열린 조직이기 때문에 누구와도 유연한 협력과 제휴가 가능하다”면서 “올가을에도 혁신성장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토론의 장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He is…

195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경영학과를 거쳐 KAIST에서 경영학박사 학위를 받고 경북대 경영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일찍부터 미래전략과 기업가정신을 연구하는 데 관심을 가져 한국경영학회 회장과 중소기업학회 회장, 전자부품연구원 이사장 등을 지냈다. 현재 성공경제연구소 이사장과 한국문화산업포럼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2015년부터 헌법재판소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4년 ‘한경영’ 이후 ‘벤처경영’ ‘창발경영’ 등 10여권의 책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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