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김일성 주석 사망 25주기인 8일 그의 유훈인 경제강국 건설을 강조하며 ‘자력갱생’을 독려했다.
외교가에서는 임박한 북미 실무협상에서 북미가 영변 핵 시설 폐기에 따른 상응조치로 ‘제재’보다 ‘체제보장’을 중점적으로 논의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실제 워싱턴 정가에서는 북한의 비핵화를 위한 첫 단계로 북한의 의미 있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와 체제보장 등을 맞교환하는 유연한 접근‘ 주장이 힘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날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유훈을 철저히 관철하여 주체조선의 존엄과 강성번영의 기상을 힘있게 떨치자’ 제목의 사설에서 “자력갱생의 위력으로 위대한 수령님들의 존함으로 빛나는 사회주의조선의 눈부신 역사를 써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신문은 “오늘의 경제건설 대진군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애국 염원, 강국 염원을 실현하기 위한 성스럽고도 보람찬 투쟁”이라며 “자력갱생, 자급자족의 구호를 높이 들고 다시 한번 세상을 놀래우는 기적적인 신화를 창조하여 전진하고 부흥하는 김일성, 김정일 조선의 위상을 만방에 떨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리의 전진을 한사코 가로막으려는 적대세력들의 반공화국 책동은 의연히 계속되고 있다”면서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밝혀주신 백승의 진로가 있고 천백배로 다져진 강력한 정치·군사적 토대와 자립경제의 발전잠재력이 있기에 우리의 배심은 든든하며 우리 조국의 앞길은 휘황찬란하다”고 강조했다.
관련기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김일성 25주기를 계기로 자력갱생을 강조한 것은 내부결속을 다지는 한편 북미 실무협상을 대비하기 위한 전략적 행보로 풀이된다.
김 위원장이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자립경제를 강조하고 나서면서 북한의 비핵화 조치에 따른 상응조치에 대한 접근법이 유연해지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월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러 정상회담과 북중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체제보장을 강조한 바 있다.
미국 내에서도 북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유연한 접근론에 대한 여론이 커지고 있다. 미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는 지난 2일(현지시간)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지난달 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을 수행한 뒤 귀국하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 브리핑한 내용을 보도했다. 이 매체는 비건 대표가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북한 핵 프로그램의 완전한 동결에 따른 상응 조치로 인도적 지원과 평양 연락사무소 설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다만 북한이 실무협상에서 제재해제를 강력하게 주장하며 협상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역사적인 남북미 판문점 회동 이후 북미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던 지난 3일 주유엔 북한대표부는 성명을 내고 “(미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와 압박 분위기를 선동하고 있다”며 “제재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기고 제재와 압박에 집착해 미국이 계속 행동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이 성명을 북미 실무협상을 앞둔 북한의 전형적인 벼랑 끝 전술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지만 김 위원장이 비핵화 협상에 나서게 된 배경은 국제사회의 강력한 대북제재로 인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박우인기자 wipark@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