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핵 갈등이 연일 고조되는 가운데 미 국방부가 중동지역에 약 1,000명의 미군을 파병하기로 했다. 지난달 ‘이란 대응’ 목적으로 중동에 1,500여명의 병력을 증파하겠다고 밝힌 데 이은 이번 추가 파병 결정은 이란이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에서 정한 핵 프로그램 감축·동결 의무를 일부 지키지 않았다고 발표한 지 불과 몇 시간 뒤에 나왔다.
미국과 이란 양국이 한치의 양보도 없이 최대 압박을 주고받으면서 중동정세는 군사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일촉즉발의 상황이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미국에 대한 이란의 ‘강대강’ 전략 이면에 미 행정부와 일부 유럽 우방국들 간의 균열을 파고들어 미국과 ‘거래’할 방법을 찾아보겠다는 이란의 ‘도박(gambling)과도 같은 외교 셈법’이 녹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17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와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패트릭 섀너핸 미 국방장관 대행은 이날 성명에서 “중동에서의 공중·해상·지상 기반 위협에 대처하는 방어적 목적으로 1,000여명의 추가 병력 파견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추가 파병되는 병력은 주로 이란군 감시와 중동에 이미 들어가 있는 미군을 보호하는 임무를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미 국방부는 지난달 아랍에미리트(UAE) 영해에서 상선 4척이 공격당한 데 이어 이달 13일 오만해상에서 발생한 두 번째 유조선 피격 사건과 관련한 추가 증거사진까지 여러 장 공개하며 이란 혁명수비대(IRGC)를 공격 주체로 거듭 지목했다. 이란이 군사행동의 명분을 쌓기 위한 미국의 자작극이라며 배후설을 완강히 부인하고 일본과 독일 등 일부 동맹국들도 미국이 주장하는 ‘이란 배후설’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자 추가 자료를 내놓은 것이다. 공개된 사진은 미군 해군이 사건 당일 피격 후 헬리콥터에서 찍은 것으로 IRGC가 유조선에 부착됐던 미폭발 폭탄을 수거하는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 담겼다.
미국의 이날 발표는 이란이 핵 협정에서 정한 핵 프로그램 감축·동결 의무를 일부 지키지 않았다고 발표한 지 몇 시간 뒤에 나와 더욱 주목됐다. 핵 협정에 따르면 이란은 우라늄을 3.67%까지만 농축할 수 있고 저장한도량도 300㎏으로 제한돼 있는데 이란이 이 협정의 일부를 파기하고 오는 27일부터 저농축 우라늄 저장 한도를 넘기겠다고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NYT는 “만약 이란이 핵 협정에서 정한 한도를 어긴다면 이란은 1년 안에 핵폭탄 하나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핵 물질을 충분히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동정세가 날로 악화하면서 일각에서는 무력충돌 우려가 고조되고 있지만 중동정세 전문가들은 ‘강대강 도박’의 속뜻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란의 목표는 미국과의 전면전이 아니라 일련의 강대강 대치를 지렛대로 활용해 최대한 외교적 이득을 얻는 것이라는 얘기다. 이란이 핵 협정을 어길 수 있다고 ‘경고’하며 유럽국의 협조를 유도한 것도 핵 협정 서명국인 영국·프랑스·독일을 향해 ‘미국과의 대(對)이란 압박 공조 전선에서 이탈하라’는 메시지를 준 것이라는 게 이들의 해석이다. WSJ는 “지난 유조선 피격 사건으로 두고 독일 등 우방국이 미국에 (이란이 배후라는)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하는 등 트럼프 행정부와 우방국 사이가 그다지 매끄럽지 못한 부분이 있다”며 “트럼프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도가 낮은 상황에서 이를 우회적으로 잘 이용하면 오히려 이란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는 셈법이 깔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이 같은 이란의 구상이 맞아들어갈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이란의 핵 협박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맞받아치면서 유럽 우방국에 흔들림 없는 공조전선 유지를 촉구하고 있다. USA투데이는 “양국 간 최대 압박만 있고 ‘플랜 B’가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고 우려하며 미국의 대이란 압력이 완화되는 반전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렵고 해답 없는 미·이란 간 긴장 고조 국면이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민정기자 je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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