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휴대전화를 이용해 한국으로 연락하다 발각됐을 때 처벌을 면하려면 1만 위안(한화 170만원) 정도의 뇌물을 써야 한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 한국 영화를 보다가 걸렸을 때는 1편당 5,000위안(한화 85만원), 휴대폰에 한국 동요 음원을 저장한 사실이 들켰을 때는 뇌물로 북한 돈 10만원(쌀 20㎏ 가격)을 단속원에 건네야 한다는 증언도 수집됐다.
통일연구원은 지난 7일 북한 이탈주민들에 대한 심층 면접조사 결과를 토대로 작성한 ‘북한인권백서 2019’를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백서에 따르면 북한 사회의 부정부패는 일상에 더 만연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에서 휴대폰 단속은 주로 ‘비사그루빠(일종의 암행 감찰단)’에 의해 이뤄지는데 한국이나 중국 등으로 연락을 취하는 행위는 당연히 불법이지만 뇌물을 사용하면 쉽게 처벌을 피할 수 있다고 증언자들은 입을 모았다. 한 북한이탈주민은 모친이 북한에서 한국으로 송금하는 브로커 일을 하던 중 불법 휴대전화를 사용하다가 체포 됐는데 1만 위안을 주고 풀려났다고 증언했다. 중국으로 연락을 하다가 들키면 3,000위안 정도의 뇌물이 필요하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국 영화를 보다 발각 되면 1편당 5,000위안, 미국 영화는 2,000위안을 뇌물로 써야 한다는 증언도 있었다.
직장 배치와 관련해서도 뇌물 수수는 일반적이라는 증언이 잇따랐다. 뇌물을 써야 직장 내에서 편한 업무를 배정 받고, 해외로 파견될 경우엔 선호 국가로 가기 위해 뇌물을 당연히 써야 하며 특히 러시아로 가기 위해 가장 많은 돈을 건네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밖에 북한은 주민의 이동을 통제하는 여행증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신속한 여행증 발급을 위해 담당자에게 담배나 현금을 건네는 게 일반적이라고 북한 이탈 주민들은 전했다.
통일연구원은 백서에서 “북한 사회의 부정부패 현상은 중앙, 지방 하부 단위를 불문하고 거의 일상화돼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며 “1990년대 경제난 이후 일반 주민에 대한 배급이 사실상 중단되고 북한 주민들이 시장을 통해 생존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비정상적으로 사적 이득을 추구하는 행위가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분석했다.
또 통일연구원은 북한이 부정 부패를 줄이기 위해 2015년 형법 개정을 통해 대량뇌물죄에 관한 형량을 높이고, 가중처벌 규정까지 추가했지만 부정부패는 되레 더 만연해지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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