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기구 소식은 빠르게 퍼졌다. 루이 16세는 동생 자크 에티엔을 만난 직후 베르사유 궁전에서 9월19일에 비행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마침 수소 열기구를 발명한 로베르 형제는 선수를 쳤다. 샹드마르스광장에서 8월27일 벤저민 프랭클린 파리 주재 미국대사를 포함한 40만명의 군중이 운집한 가운데 수소 열기구를 날렸다. 결과는 대성공. 40분 넘게 비행하며 파리에서 21㎞ 떨어진 지역에 내려앉았다. 놀라 교회로 피신한 주민들은 대책 회의 끝에 ‘하늘에서 내려온 괴물’을 돌과 갈퀴로 공격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몽골피에 형제는 디자인에 정성을 쏟았다. 높이 7m, 지름 15m의 기구에 태양이 지나가는 길인 ‘황도 12궁’과 왕실 문장, 루이 16세의 초상, 황금사자와 독수리를 그려넣었다. 국왕이 정해준 날짜에 몽골피에 형제의 오리와 닭·양을 태운 열기구는 국왕 부부와 중앙 귀족, 파리 시민들 앞에서 8분간 8㎞ 상공을 날았다. 이어 10월과 11월에는 사람을 태운 열기구가 최초의 비행에 성공했다. 죄수를 태우자는 의견이 강했지만 탑승을 자원한 귀족 출신 과학자와 군 지휘관이 기구를 타고 내렸을 때 군중은 열광적인 환호를 보냈다. 로베르 형제도 10일 뒤 사람을 태운 수소 열기구로 2시간 넘게 파리 하늘을 수놓았다.
경쟁 속에 발전을 거듭한 열기구는 빠르게 퍼졌지만 하늘을 날겠다는 오랜 꿈을 실현하는 데 희생된 생명이 적지 않다. 도버해협 횡단 비행에 성공한 1785년에는 최초의 추락 사고로 사망자가 나오고 주택 100채가 불탔다. 공기보다 무거운 비행체가 하늘을 날게 된 20세기 이후에도 숱한 시험 비행사는 물론 강제로 비행석에 앉은 실험동물이 목숨을 잃었다. 명복을 빈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