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서(66·사진) 총신대 총장의 기막힌 인생 드라마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아내 한점숙(60)씨다. 이 총장이 앞이 보이지 않는 탓에 한씨는 늘 곁에서 남편을 ‘보좌’한다. 가로막힌 벽이 있으면 부딪히지 않도록, 문턱이 있으면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팔짱을 끼고 인도한다. 문자 그대로 ‘동반자’이자 ‘반려자’인 셈이다.
두 사람은 이웃 동네에서 함께 자랐지만 나이 차가 많았던 탓에 이 총장이 실명하기 전까지 만난 적은 없었다. 그랬던 두 사람이 평생의 인연을 맺을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준 곳이 전남 순천의 한 시골 교회였다. 서울맹학교를 졸업하고 총신대에 입학하기 전 지난 1975~1976년 순천성경학교에서 공부할 당시 이 총장은 지인의 권유로 주말마다 동네 교회에서 중·고등부 성경 교사로 일했다.
이때 이 총장이 가르친 학생 가운데 순천여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한씨가 있었다. 선생님과 학생으로 좋은 인상만 품었던 두 사람의 인연은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1979년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립한 이 총장이 전남대 지부 설립을 위해 광주를 찾았을 때 어엿한 대학생으로 성장한 한씨를 다시 만나게 됐다. 종교에 대한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 비슷한 점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다. 시각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만남에 대해 주변의 우려도 있었고 가족의 반대도 있었으나 둘의 끈끈한 사랑을 꺾지는 못했다.
전남대 문리대를 졸업하고 중학교 수학 교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한씨는 1983년 이 총장과 결혼한 후 이듬해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면서 ‘내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총장은 “당시에 아내가 훗날 남편이 교수가 되고 대학 총장이 될 줄 어찌 알았겠느냐”며 “미래가 불투명하고 초라하기만 하던 사람을 남편으로 택한 것 자체가 대단한 결단”이라고 고마워했다. 옆에서 수줍은 표정으로 인터뷰를 가만히 지켜보던 한씨는 “그저 시골교회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며 “평생의 배우자감을 선택하는 데 ‘사랑’ 이외에 특별한 이유가 있겠느냐”고 쑥스러워했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성형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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