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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인감, 그 익숙한 것과의 결별!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

인감제도 비효율·부작용 해소 위해

2012년 '본인서명사실확인제' 도입

시행 7년 지났지만 발급건수 저조

지자체가 활성화에 적극 나서야

윤종인 행정안전부 차관 /사진제공=행안부




3,688만8,168통.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급된 인감증명서 총합계다. 휴일을 제외하면 매일 15만여통의 인감증명서가 전국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발급된 셈이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도입된 인감증명서는 한 세기가 넘도록 부동산과 자동차 매도, 금융거래 등 재산권 처분에 반드시 필요한 서류로 사용되면서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인감도장 하나씩은 구비할 정도로 보편화됐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별다른 문제 제기 없이 유지되고 있는 제도가 얼마나 될까 생각해보면 인감제도의 끈질긴 생명력에 대해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지구상에서 우리나라와 일본·대만 정도가 활용하고 있는 제도이기에 더욱더 그렇다.

인감제도의 운영은 크게 본인의 인감을 등록관청에 신고하고 증명서를 발급받는 절차로 나뉜다. 읍·면·동 주민센터의 담당 직원은 민원인이 인감을 신고할 경우 개인별 인감대장을 작성한 후 청사 건물 서고에 보존용 비닐 커버를 씌워 영구보존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감대장 작성 날짜와 전입, 전출, 신규, 말소, 등록기준지 변경신고사항 등을 빠짐없이 기록한다. 인감 신고자가 주소를 이전하면 등기우편을 통해 새 주소지로 이송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간단한 인감 신고 뒤에 숨겨진 번거로운 행정절차와 이에 따른 비용은 고스란히 국민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무려 3,896만3,531건의 인감대장이 관리되고 있으니 그 비용이 결코 가볍지 않다. 또 인감증명서는 대리발급이 가능해 본인의 의사에 반한 발급으로 법적 분쟁을 초래하는 등 부작용도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인감제도의 비효율과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 2012년 서명이 보편화한 시대 흐름에 맞춰 ‘본인서명사실확인제’를 도입했다. 사전에 인감도장을 신고할 필요없이 가까운 주민센터에서 신분확인 후 서명만 하면 인감증명서와 동일한 효력을 갖는 본인서명사실확인서를 발급한다. 편리함에 있어 기존의 인감증명서와 비할 바가 못 된다는 평가를 받은 이유다. 본인 외에는 대리발급이 허용되지 않으므로 법적 분쟁이 발생할 소지도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특히 가까운 읍·면·동 주민센터를 방문해 한 번만 이용승인을 받으면 ‘정부24’에 접속해 언제든지 인터넷을 통해 ‘전자본인서명확인서’를 이용할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

정부는 본인서명사실확인제도 정착을 위해 그동안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지만 오랜 기간 익숙해진 인감제도와 결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치분권 분위기가 무르익는 시대적 변화에 발맞춰 이제는 지방자치단체가 본격적으로 나서주기를 기대한다. 본인서명사실확인서 발급은 시장·군수·구청장의 자치사무로서 주민편의 제고와 행정비용 감축 등 제도적 장점을 고려하면 망설일 시간이 없다.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안내하는 동시에 관내 금융기관, 부동산중개업소, 자동차 매매상사 등 수요기관의 적극적인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소속 직원들이 본인서명사실확인제도를 이해하고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공무원들도 알지 못하는 제도를 주민들이 사용하도록 기대할 수는 없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본인서명사실확인서 발급 건수는 인감증명서 발급 건수의 5.5%에 불과하다. 시행된 지 7년이 돼가는 제도임을 감안하면 저조한 수치다. 주민들이 더 이상 장롱 속에 감춰둔 인감도장을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하거나 손에 묻은 인주를 닦는 번거로움을 겪지 않도록 지자체의 분발을 기대한다. 먼지 쌓인 인감대장이 주민센터 서고에서 사라지는 그날이 오면 전국 3,510개 읍·면·동 주민센터 직원들은 두꺼운 인감사무 매뉴얼을 숙지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대신 동네 구석구석을 돌며 주민 불편사항을 해소하는 민원 해결사로 변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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