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국민연금은 현재 9.9%의 보험료를 내고 가입기간 평균소득의 24%(소득대체율)를 연금으로 받습니다. 소득대체율이 낮다는 여론에 따라 이를 33.3%로, 보험료율도 단번에 11.9%로 올리자는 사회적 합의를 이뤘어요. 물론 보험료를 추가 인상할 수 있다는 단서도 달았죠. 반면 우리나라는 9%를 내고 평균소득의 44.5%(40년 가입자, 2028년 40%로 하락)를 받게 돼 있어요. 캐나다보다 덜 내고 두 배가량 받는 구조여서 지금도 지속 가능성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부는 ‘노후소득보장 강화’라는 명분을 내세워 소득대체율 45%에 보험료율을 오는 2021년 10%, 2026년 11%, 2031년 12%로 인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캐나다보다 10년 늦게서야 같은 수준의 보험료를 받고 연금은 1.36배 더 주겠다는 겁니다.”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국민연금 제도나 정부의 개편안은 엄청난 연금지급 부담을 후세대에 떠넘길 뿐”이라며 “노후소득보장 강화를 명분으로 소득대체율 인상을 추진하는 것은 고용노동·복지정책으로 풀어야 할 문제를 국민연금에 떠넘기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윤 연구위원은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 가능성과 가입자 등의 수용성을 고려한 보험료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연금 보험료율을 17.2%까지 올려야 한다고 건의했다는 것은 오해”라며 “보험료를 올릴 수 있는 마지노선을 13.5%로 보고 1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인상하자는 안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설명했다.
-보험료율을 17.2%까지 올려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후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면 17.2%까지 인상할 필요가 있지만 가입자 등의 수용성을 고려해 13.5%까지만 올리고 3.7%포인트에 해당하는 나머지는 국민 평균 기대여명과 연금 수급기간이 길어지는 만큼 매달 받는 연금을 깎아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을 도모하는 ‘자동안정화 장치’를 도입해 풀어가자는 것인데 일부 오해가 있었다. 스웨덴·핀란드·독일·일본 등에서는 이미 시행하고 있다. 보험료의 대폭 인상이 어렵기 때문에 우리도 이런 국제적 추세에 부응할 필요가 있다.
-자동안정화 장치란 무엇인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를 수 있는데 핀란드의 경우 국민 평균 기대여명이 늘어나는 만큼 매달 받는 연금액에 기대여명계수를 곱해 일정 비율 깎는다. 연금을 받는 연령을 늦추는 것(1975년생은 66세2개월, 2000년생은 68세1개월)도 병행한다. 기대여명계수의 경우 기존 제도에서 받는 연금액에 2015년 0.972, 2030년 0.909, 2065년 0.860, 2085년 0.848을 곱한 게 실제로 받는 연금액이다. 연금액이 지나치게 하락하지 않게 기대여명계수 하한선도 두고 있다. 평균 기대여명만큼 살면 사망할 때까지 받는 연금 총액은 줄지 않는다. 반면 우리나라 국민·공무원연금 등은 전체 수급자들이 당초 예상보다 5년을 더 살든, 10년을 더 살든 매달 받는 연금액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평균수명과 연금 수급기간이 늘어날수록 수급자에게는 이득이지만 연금기금 재정에는 엄청난 부담이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얼마나 되나.
△평균 41%가량 된다. 한국은 40년 가입자 기준으로 올해 44.5%다. 19% 안팎의 보험료를 내는 독일의 소득대체율 48%(2030년 40%대 초반)와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보험료율은 독일의 반이 안 되지만 소득대체율은 독일과 비슷하다. 물론 비정규직, 정년 전 퇴직자 비중이 높고 국민연금의 역사와 평균 가입기간이 짧아 실질 소득대체율과 평균 연금액이 낮다. 독일은 40년 안팎 가입자가 많아 명목·실질 소득대체율 간의 차이가 작다. 그런데도 평균 연금액이 우리 돈으로 월 120만원 수준이다. 독일 등 선진국에서는 풍족한 연금을 준다는 것은 환상이다.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이 지나치게 많은 연금을 타기 때문에 생기는 상대적 박탈감도 크다.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재정추계위원회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제4차 재정계산이 지나치게 낙관적인 전망에 기초하고 있다는 비판이 있다.
△장밋빛 합계출산율 전망(2030년 1.32명, 2060년 1.38명)을 토대로 이뤄졌다. 하지만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0.98명까지 떨어졌다. 추계기간도 70년으로 100년인 일본이나 75년인 미국보다 짧다. 유엔과 국제노동기구(ILO)는 한 개인의 일생을 평가할 수 있는 기간을 재정추계 기간으로 잡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2088년 평균수명을 93세로 가정했다. 따라서 적어도 90년을 내다보며 재정추계를 해야 한다. 정부는 장기 재정추계가 어렵다고 하지만 핑계다. 추계기간이 짧다 보니 출산율이 0.86으로 떨어져도 국민연금기금 소진 시점은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4차 재정계산은 통계청의 2016년 장래 인구추계를 토대로 이뤄졌다. 통계청이 올해 3월 ‘2017~2067년 장래인구 특별추계’를 새로 발표했는데 인구 고령화 속도가 빨라져 국민연금 재정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으로 보인다.
△기존 추계보다 3년 빠른 2029년부터 총인구가 감소하고 연금수급자 수를 결정하는 노인인구 비중이 40%에 육박하는 시점도 2051년으로 7년 빨라졌다. 15~64세 생산연령인구는 50년 뒤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 생산연령인구 100명이 부양해야 할 고령인구의 비율을 뜻하는 노년부양비가 2017년 18.8명에서 2067년 102.4명으로 5.5배 뛰게 됐다. 일해서 보험료를 낼 사람은 줄어들고 연금을 받아야 할 사람이 급증하면 국민연금기금이 더 빨리 바닥나거나 소진 후 부과 방식으로 전환했을 때 미래 세대가 져야 할 보험료율(4차 재정계산 2060년 26.8%, 2088년 28.8%)도 30%를 웃돌 가능성이 크다.
-정부안은 국민연금 보험료와 소득대체율을 모두 올리는 방식이어서 연금기금 재정 안정화 효과가 거의 없다. 노후소득 양극화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비판도 있다.
△OECD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정규직 근로자의 국민연금 수급률은 97.6%지만 비정규직은 48.2%에 불과하다. 소득대체율을 올리는 데 필요한 정도의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은 소득이 높고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근로자에게 혜택이 집중되고 불충분한 보험료 인상에 따른 연금기금 재정부담을 후세대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 근로소득 양극화가 노후소득 양극화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줄이고 평균 가입기간을 늘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더 많은 취약계층이 국민연금에 가입하도록 보험료 지원대상을 현행 저소득 직장가입자에서 본인이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는 특수근로자, 저소득 자영업자로 확대할 필요가 있다. 정년인 60세까지, 더 나가 65세까지 일하면서 보험료를 낼 수 있도록 직무급 중심으로 급여체계를 개혁하는 데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
-보험료를 올리면 ‘중간소득 이상 가입자가 낸 보험료 대비 연금 총액의 비율’인 수익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그래서 국민연금의 소득비례적 성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매달 받는 연금액을 산출할 때 ‘본인의 가입기간 평균소득(A값)+전체 가입자 평균소득(B값)’을 평균한다. 소득비례 요소와 소득재분배 요소가 연금액에 50대50으로 영향을 미친다. 이를 75대25로 고쳐 소득비례 연금적 성격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는 65세 이상 노인의 70%에게 세금으로 기초연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어떤가.
△나라마다 제도가 다양한데 핀란드에서는 65세 이상 노인의 43%(전액은 7%)가량이 기초연금을 받는다. 1993년까지만 해도 93%가 기초연금을 전액 받았지만 국민연금 수급액에 따라 감액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기초연금 개편안 역시 일률 인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소득 하위 70%에게 동일한 액수를 지급하는 방식은 정부의 재정부담만 늘리고 노인 소득·빈곤의 양극화를 풀기 어렵다. OECD도 기초연금 대상자를 줄이고 취약계층에게 더 많은 급여를 지급하라는 정책 권고를 했다. 노후소득보장 강화라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더 많은 취약계층이 국민연금에 가입해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도록 해야 한다.
-재산에서 부동산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의 현실을 감안해 65세 이상 노인빈곤율 산정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현재 ‘중위소득(소득 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한가운데 소득)의 50% 미만 노인 가구 비율’을 노인빈곤율 기준으로 쓰고 있다. 이 비율이 46.5%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하지만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높은데 공적연금·근로소득 등만 따져 노인빈곤율을 계산하면 착시에 빠질 수 있다. 노인가구가 보유한 주택·농지 등을 담보로 주택·농지연금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빈곤율이 29.3%로 떨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65세 이상 노인의 77%가 집을 갖고 있다.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실제로 빈곤한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더 지급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 jaelim@sedaily.com
He is…
1961년 강원 양양에서 태어나 고려대 영어영문학과(학사)와 경제학과(석사)를 졸업하고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민연금연구원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국민·기초연금 등을 연구해왔다.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심의위원회 부위원장,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험실장·연금센터장 등을 지냈으며 현재 공적연금연구센터와 노동연계복지연구센터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