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핵화를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제재를 3~5년 더 지속하고 남한 정치권이나 민간에서는 핵 균형을 위한 핵무장 담론을 펴 중국이 딴생각을 안 하고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게 해야 합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 겸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의 비핵화는 난제 중의 난제여서 협상만으로는 풀 수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공산화에 성공한 베트남도 미국의 경제봉쇄 10년 만에 개방정책인 ‘도이모이’로 돌아선 사례를 지적했다. 최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남 원장을 만나 지난 4월 초 노동당 제7기 4차 전원회의와 최고인민회의 제14기 1차 회의를 통해 출범시킨 김정은 2기 권력구조의 의미를 짚어보고 북한의 비핵화를 어떻게 이끌어 낼지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남 원장은 북한이 대북제재를 돌파하기 위한 권력구조 개편으로 김일성 시절의 절대 독재 시스템을 부활시켰고 경제적으로는 자력갱생체제를 강화했다고 분석했다. 또 3차 북미회담은 올 4·4분기나 내년 1·4분기에 열릴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4월 초 권력구조를 개편해 김정은 2기 체제를 출범시켰는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실질적인 북한의 지도자이지만 그동안 아버지 김정일 시대의 권력 프레임에서 통치했다. 북한에서 국무위원장은 국가의 최고 영도자이지만 외교적으로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인 김영남이 국가를 대표했었다. 이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때 도입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이번에 고령인 김영남(91)을 퇴진시키고 ‘김정은 원톱’ 체제로 가는 것이 권력을 확고히 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선대 지도자 김일성이 사용했으나 2대 지도자 김정일이 폐지한 주석제의 절대 독재 시스템을 부활시켜 권력 강화를 시도한 것이다. 고모부 장성택과 이복형 김정남을 제거해 내부의 권력 도전을 차단하는 한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두 차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네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대외적으로 위상이 높아진 만큼 실질적인 국가원수 직함이 당연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최룡해가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임명돼 2인자가 됐다고 하지만 이제는 일거수일투족이 국가보위성의 감시와 견제를 받는다. 그의 권력은 오히려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경제사령탑인 내각 총리가 박봉주에서 김재룡 자강도 당 위원장으로 교체됐는데.
△박봉주는 올해 80세로 연로한데다 초유의 대북제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자력갱생 정책을 추진할 인물로의 교체가 불가피해졌다. 김 신임 총리가 당 위원장으로 있던 자강도는 북한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때 자력갱생의 모범이 됐던 지역이다. 김정일이 자주 찾아 ‘강계정신’으로 홍보해왔으며 강계트랙터종합공장 등 군수품 생산공장이 모여 있다. 결국 세대 교체와 함께 강계정신을 토대로 삼아 대북제재를 자력갱생으로 극복하려는 의도로 판단된다.
-북미정상회담에서 핵심 역할을 해온 외교라인은 신임받은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의 외교라인은 김정은이 트럼프와 협상하는 과정에서 가장 믿고 의지하는 테크노크라트들이다. 특히 북한의 지도자들은 군사·외교·과학기술 등 3대 분야에서는 실무자의 의견을 존중하는 전통을 갖고 있다. 싱가포르회담이 트럼프의 오산이었다면 하노이회담은 김정은의 오판이었다. 원포인트 릴리프인 김혁철은 다시 벤치로 복귀시켰다. 김정은은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협상라인을 교체하기보다는 그들을 중용해 ‘미국책임론’을 제기했다. 북한 대미외교의 핵심인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차관급으로는 이례적으로 국무위원회 위원과 최고인민회의 산하 외교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는 등 핵심 권력기구의 요직을 잇따라 꿰차며 약진했다. 이후 대미 외교라인들이 나서서 트럼프 대통령보다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등 참모들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고 배제하는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김영철에서 장금철로 교체됐는데.
△대미외교는 영어가 잘되는 외무성이 하고 대남정책은 통전부가 해야 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의 노딜 문제를 누군가는 책임져야 하는 측면도 고려됐다. 아버지 시대의 김영철을 퇴진시키고 실무자를 얼굴마담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마침 남한도 통일부 장관이 새로 왔으니 새 인물을 올려 ‘통통 라인’으로 풀어보라는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장금철은 지하공작을 하던 인물이어서 베일에 가려져 있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계속된 제재에도 별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중국과 러시아의 지원을 얻어 제재를 피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가 도와준다면 유엔 제재를 단계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북한산 석탄을 러시아산으로 둔갑시켜 공해에서 파는 협력도 지속할 것이다. 시장(장마당)도 제재를 버틸 수 있게 하는 주요 동력이다. 유류 가격이 올랐지만 400만배럴 수입 상한선에서 버티기에 들어갔다. 생필품 소비자물가도 대체로 안정세다. 게다가 소련과 동유럽 붕괴로 초래된 1995~1998년 고난의 행군을 통해 경제적 위기를 넘기는 노하우를 축적해왔다. 그러나 유엔 제재가 향후 2019~2021년에 걸쳐 3년 이상 지속된다면 경제의 펀더멘털이 흔들리며 정치적 불안이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유엔 제재가 촘촘해지고 불법 환적·밀수 등에 대한 감시가 강화돼 북한 경제의 숨통이 멎는 상황이 닥칠 경우 북한 정권의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이번 조직개편도 이와 관련해 장기전에 대비하는 포석이다.
-김 위원장은 2기 조직개편 후 시정연설에서 “제재 해제 때문에 미국과의 회담에 집착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를 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두 차례의 회담을 통해 상대의 복안을 확인했으므로 마지막이 될 3차 회담은 올 4·4분기나 내년 1·4분기쯤 열릴 것이다. 해는 지는데 갈 길은 먼 형국이다. 북핵은 과거·현재·미래의 핵무기로 구성돼 있다. 핵탄두는 이미 제조를 완료해 비밀장소에 은닉해놓은 과거의 핵무기다. 영변 핵시설은 핵무기를 제조하는 데 필요한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시설로 현재와 미래의 핵무기다. 사실상 북미 비핵화 협상의 최대 고비는 핵탄두로, 영변은 그다음 문제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핵탄두를 강조하며 미국의 비핵화 목표를 분명히 했다. 미국은 비핵화 리스트에 핵탄두와 영변 핵시설·분강 등 플러스알파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각종 미사일 등도 명시돼야 한다. 아직은 한 번의 기회가 남아 있다. 미국의 대선 정국에서 트럼프가 재선을 확신한다면 정상회담에 대한 열기는 가라앉을 수도 있다.
-북한이 어느 정도 수준의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 보시는지.
△북한은 영변의 가격을 90%로 보고 미국은 50%로 봐 거래가 성사되지 못했다. 미국은 분강·강선에서 우라늄 농축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영변으로 제재완화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핵실험을 이미 여섯 번이나 했기 때문에 플루토늄 방식으로 영변에서 생산되는 시설은 북한 입장에서 중요하지 않다. 분강·강선에서 농축하는 것이 50%나 되기 때문에 영변에 대해서는 외국 사찰단이 와도 기꺼이 내놓겠다는 얘기다. 즉 영변 이상의 비핵화는 어렵다는 것이다. 북한 핵무기 개발은 북한의 역사와 함께했을 정도로 중요하기 때문에 포기는 있을 수 없다. 핵은 적대국 양국이 모두 가지면 억지능력으로만 작용하는 쓸모없는 물건이지만 한쪽만 가지면 가공할 무기가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핵은 핵으로 공포의 균형을 맞출 수밖에 없다.
-북한 핵 문제가 결국 해결방향으로 간다면.
△북한이 일단 핵 리스트를 내줘야 한다. 북한 핵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다. 북한이 이 기회를 잡아야 한다. 지금은 드론이 뜨고 인공위성으로 보고 전기사용량으로 북한에 어떤 핵시설이 돌아가는지 잡아낼 수 있다. 영변 갖고 가격을 다 계산하려니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아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제재를 하나라도 풀면 지금까지 북한을 눌렀던 게 모두 와해되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이 부동산이나 기업을 인수합병(M&A) 하듯이 일단 리스트를 내놓아야 거래가 시작될 수 있다. 이행 여부는 두 번째 문제다.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우리 정부가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북한 비핵화는 난제 중의 난제다. 협상을 통한 노력을 진행하는 동시에 한국의 핵무장론을 공론화하는 시도도 병행해야 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 가입국으로서 정부가 나설 수는 없지만 정치인이나 연구자들은 얘기할 수 있다. 핵무장 담론은 중국을 움직여 북한이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오게 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최종적으로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는지는 국민의 안보의식에 달려 있다. 북한의 민주화를 촉진하기 위해 외부 정보를 유입시키는 작업도 남한의 정권변동과 상관없이 꾸준히 해야 한다. 사람들이 모여야 저항도 하고 독재권력에 대응하는데 북한에서는 회합과 이동이 어렵다. 1990년대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구소련에서 진행했던 것과 같이 정보를 유입시켜야 한다. 모스크바에 맥도날드가 문을 열고 이를 통해 자유세계 소식이 들어가고 그것이 학교·언론·비정부기구(NGO)·정계·재계까지 확산될 때 어느 순간 폭발할 것이다. 평양의 변화 없이 북한의 변화는 없다. 평양의 인구는 250만명으로 전체 2,500만명의 10%에 불과하지만 북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탈북자 3만명 시대이지만 90%가 평양 밖에서 왔다.
-중국은 통일에 방해세력인가.
△중국은 기본적으로 두 개의 한국이 중국의 국가 이익에 부합한다고 본다.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지만 북한을 주저앉혀 혼란이 생기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결국 한반도 문제의 변곡점은 중국에 문제가 생겨 한반도에 관심을 기울일 수 없는 상황이 오는 것이다. 앞으로 20~30년 안에 중국에 그런 혼란이 올 수 있을 것이다. 그전에 북한에 정보를 계속 공급하고 핵담론을 해나가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화해 대북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든 지도자는 청와대에 들어가는 순간 내가 통일대통령이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는데 그건 잘못이다. 종신지도자와 5년짜리 지도자가 어떻게 동등하게 할 수 있나. 문재인 정부는 대북정책이 국정의 거의 75%나 된다. 일자리 문제부터 위기대처, 4차 산업혁명 준비, 국제외교 등 할 일이 너무 많다. 대북정책의 비중을 20% 이내로 줄여야 한다. 그것만 쳐다본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봉쇄정책을 하다가 다시 개방정책으로 가는 것은 좋은데 그 정도가 지나치다. 이렇게 나가다가는 다음에 누가 잡든 외환 위기를 다시 맞을 수 있다. / 오현환 논설위원 hhoh@sedaily.com
He is…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국어교육학과·경제학과를 졸업하고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 들어갔다. 미국 미주리주립대에서 북한 식량 관련 논문으로 응용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정원으로 복귀해 북한과 관련한 연구활동을 지속하다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장, 고려대 북한학연구소장을 거쳐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통일부·국방부·농림부에서 정책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한국북방학회장, 북한연구학회 부회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차관급)을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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