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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군의 자살률 감소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

안의식 탐사기획팀장

4050남성 자살률 가장 높은건

집단우선 문화의 어두운 그림자

개인 가치 존중받으면 자살 감소

건강한 개인주의 확산에 힘써야





군의 자살률이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지난 2011년 97명이던 연간 군 자살사고는 2013년 79명, 2015년 57명, 2017년 51명 등으로 6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10만명당 자살자 수를 뜻하는 자살률을 봐도 2016년 8.8명으로, 전체 20대 남성 자살률 19.9명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 같은 자살률 하락은 병영문화가 개선되고 군 복지 수준이 높아진 때문으로 해석된다. 병영문화는 급속히 바뀌고 있다. 벌써 오래전부터 구타와 욕설이 금지됐고 올 2월부터는 군 장병의 일과시간 외출도 허용됐다. 오는 4월부터는 휴대폰 사용도 전면 확대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변화가 ‘기강해이·군기 빠짐’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2017년 국방통계연보에 따르면 군의 각종 안전사고(차량·폭발·항공·추락·익사·화재 등) 사망자 수가 2008년 58명이었지만 2016년에는 24명으로 급감했다. 기강해이는 아니라는 의미로 볼 수 있다.

군의 자살률 감소는 ‘국가가 군인 개개인의 인권과 삶을 존중해준 결과’로 해석된다. 국가가 대한민국 젊은이들을 강제로 징집하지만 국가는 이들이 안전하고 건강한 몸으로 전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면서 이들의 인권과 ‘개인적 삶’도 존중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자 수를 성별·연령별로 구분해보면 50대 남성이 가장 많고 다음이 40대 남성이다. 2017년 자살자 수를 보면 50대 남성이 2,002명, 40대 남성이 1,692명으로 합하면 3,694명이다. 2017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4,185명)의 88%에 해당한다.

40~50대 남성 자살자 수가 이처럼 많은 이유는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경기침체, 자영업 부진, 강요된 퇴직, 극심한 경쟁과 과도한 업무 스트레스, 가정에서의 소외 등이다.

전문가들은 자살의 가장 큰 이유로 고립감을 든다. 아무도 나의 고통·외로움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절망감, 어디에도 나의 설 자리가 없고 공감받을 수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다는 좌절감이 극단으로 나아가다 보면 자살에 이른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입신양명(立身揚名)’과 명분이 중요한 사회다. 나의 가치를 ‘자연인 ○○○의 가치’가 아니라 ‘사회·조직에서의 역할’로 판단한다. 그래서 명함이 중요하다.

중장년 남성들은 특히 이러한 경향이 심하다. 이들은 어려서부터 개인이 아니라 집단의 일원으로서 정체성을 부여받아왔다. 특히 ‘까라면 까’ 문화가 지배했던 과거 군 생활을 통해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을 중시하는 경향’은 더욱 강화됐다. 이들의 과거 학창시절, 민주화 투쟁이 한창이던 시기에도 개인은 없었다. 민주화라는 지상과제에 개인의 가치·개인적 감성은 사치였다. 사회생활·직장생활에서는 더 하다. 회사의 목표가 내 목표고 조직에서의 역할로 내 가치가 규정된다.

그러다 사업이 어려워지고 회사생활과 가정생활에 위기가 찾아오면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외부에서 보는 눈도 내가 자신을 보는 눈도 ‘조직인 ○○○’으로 보는 법밖에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가치보다 집단의 가치를 중히 여기는 사회에서 사업과 직장생활에서의 실패는 곧 내 인생의 실패로 연결된다. 중장년 남성들의 높은 자살률 역시 이 같은 경향의 한 결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살예방 전문가들은 자살이 줄기 위해서는 ‘건강한 개인주의’가 보다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강한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다르다. 개개인의 가치를 그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과 상관없이 귀히 여기는 것을 말한다. 조직에서 상하관계 역시 그 역할의 다름은 인정하면서도 그것이 개인의 가치를 침해하는 식으로 전개되는 점은 자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군의 변화는 고무적이다. 군이라는 특수성을 유지하면서도 가능한 병사들의 개인적 가치와 인권을 보호하려는 노력 말이다.

건강한 개인주의가 확산되면서 중장년 남성의 자살률도 몇 년 안에 절반으로 뚝 떨어지는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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