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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브렉시트가 주는 교훈

강인수 숙명여대교수 한국국제통상학회장

英 리더십 실종으로 불확실성 커져

합의냐 노딜이냐 의회에 공 넘어가

어떤 결과든 국민에 피해 불가피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Brexit)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연합(EU)과 도출한 브렉시트 합의안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비난을 받으면서 표류하고 있다. 합의안에는 영국이 EU 탈퇴 이후 오는 2020년 말까지 전환기간을 가지며 이 기간 현행 EU의 제도와 규제를 준수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또 다른 주요 내용은 양측이 아일랜드와 영국 영토인 북아일랜드 간 ‘국경장벽(hard border)’이 발생하지 않도록 영국 전체가 한시적으로 EU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2020년 말까지 양측이 별도의 합의를 도출하지 못할 경우 2021년 1월부터는 안전장치가 가동돼 결국 영국은 EU 관세동맹에 잔류하게 된다. 원안에는 안전장치가 일단 가동되면 양측의 합의가 없는 한 종료될 수 없도록 돼 있다. 영국의 정책주권 회복을 목표로 EU 탈퇴를 주장한 보수당 내 강경파는 EU 동의 없이는 종료가 불가능한 안전장치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EU 잔류를 의미하기 때문에 합의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연초 보수당 내에서 메이 총리에 대한 불신임 투표가 진행될 정도로 보수당 내 반발이 컸고 그 결과 지난 1월15일 하원에서 브렉시트 합의안은 찬성 202표, 반대 432표로 부결됐다.

영국 하원은 3월12일 브렉시트 강경파가 요구했던 핵심 사항이 반영된 수정 합의안도 부결시켰다. 수정 합의안에는 ‘백스톱’의 무기한 적용 불가 적용 법제화와 영국의 일방적 ‘백스톱’ 종료 권한 부여와 같은 보완책이 반영됐다. 그럼에도 영국의 일방적 백스톱 종료 조건과 수단이 구체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부결된 것이다.



13일에는 아무 합의 없이 EU와 결별하는 ‘노 딜’ 브렉시트를 거부하는 브렉시트 연기안이 압도적 표차로 가결됐고 야권이 제안한 제2 국민투표 추진안도 큰 표 차이로 부결됐다. 시간에 쫓긴 영국은 브렉시트를 불과 8일 앞둔 3월21일에 유럽의회와 4월12일까지 일단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EU는 영국 하원이 이번주 브렉시트 합의문을 승인할 경우 5월22일까지 브렉시트를 연기하기로 했다. 그러나 승인하지 않을 경우 영국이 4월11일까지 차기 유럽의회 선거에 참여하기로 결정하면 브렉시트를 더 오랜 기간 연기하고 선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하면 4월12일 자동으로 아무 합의 없이 노 딜 브렉시트를 하도록 제안했다. 현재 영국 정부는 합의에 따른 탈퇴, 노 딜 브렉시트, 긴 브렉시트 연기, 브렉시트 철회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진행상황을 보면 영국 하원이 전격적으로 합의문을 승인할 가능성도, 노 딜 브렉시트 가능성도 커 보이지는 않는다. 당장에 브렉시트를 철회할 가능성은 더욱 낮다. 결국 지지부진한 상태가 상당 기간 지속되는 ‘긴 브렉시트 연기’ 가능성이 가장 높다.

결론이 어떤 식으로 나든 간에 브렉시트는 ‘포퓰리즘에 기댄 준비 안된 정책집행의 비용이 생각보다 훨씬 클 수 있다’는 점을 일깨워주고 있다. 이민자 급증에 따른 일자리 부족과 교육·의료 등 사회복지 부담 증가, 과도하다고 느끼는 EU 분담금, 독일 주도의 EU 체제에 대한 불만 누적 등이 브렉시트의 직접적 원인으로 꼽혔다. 그러나 근본적인 원인은 경기침체에 따른 저성장 기조 고착화에 있다. 근본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보다는 국민투표라는 정치적 행위를 통해 이를 피해가고자 한 것이 발목을 잡게 된 것이다. 정치적 리더십이 실종된 상태에서 영국 경제의 근간인 금융산업의 피해가 가시화되고 있다. 금융기업들이 1조3,000억달러를 EU로 이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고 국제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우리도 경제적·사회적 비용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국민의 뜻’으로 포장돼 추진한 정치적 행위의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지게 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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