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희상 국회의장과 여야 5당의 대미 의원외교 대표단에 포함된 자유한국당이 미국 현지에서 별도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의원외교 대표단에는 나경원 원내대표와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인 강석호 의원, 외통위 간사인 김재경 의원, 국회 국방위원회 간사인 백승주 의원 등 4명의 한국당 의원이 포함됐다.
통상 의원외교 대표단의 해외 출장 시 여야는 주요 현안에 대한 ‘공통분모’를 찾아 한목소리를 내곤 했지만, 이번 방미에서는 유독 한국당의 ‘마이웨이’가 두드러진다. 이들은 국회 대표단의 주요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그들만의 일정’을 만들거나, 미국 각계에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국내 보수진영의 우려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나 원내대표를 비롯한 한국당 의원들은 11일(현지시간) 조지 H.W. 부시 행정부 시절 합참의장을, 조지 W. 부시 행정부 시절 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 전 장관과 별도의 면담을 가졌다. 나 원내대표는 이 자리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이전에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과 종전선언 등을 논의하는 분위기에 (한국) 국민이 심각한 우려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파월 전 장관은 “한국전쟁 종전선언은 유엔에서 다뤄야 할 사안이며, 종전선언을 통해서 얻을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한 뒤 “정권이 위험에 빠질 수 있어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 측은 파월 전 장관과의 만남을 위해 국회 정상화 논의’가 이뤄질 기대가 있던 문 의장이 주재한 여야 5당 지도부 오찬에는 불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참석자는 취재진에게 “나 원내대표가 파월 전 장관을 만나는 일정 때문에 오찬에 안 와서 국회 정상화 얘기는 한마디도 못 했다”고 말했다.
앞서 한국당 의원들은 워싱턴DC의 한 호텔에서 월레스 그렉슨 전 미국 국방부 동아태 차관보와 조찬 간담회를 했다. 그렉슨 전 차관보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한국, 일본의 핵무장 추진 가능성이 높아지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며 “미국이 한국의 안전을 위해 한미동맹, 대북 군사적 억지력 강화보다 북한 문제를 우선시하는 것은 매우 큰 오류”라고 밝혔다.
한국당 의원들은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비 헌화, 존 설리번 미국 국무부 부장관 면담, 한반도 전문가 간담회, 워싱턴 동포 초청 간담회 등 대표단의 공식 행사에는 동참했다. 한국당 의원들은 12일 오후까지 국회 방문단과 일정을 함께 하고 이후에는 당에서 자체적으로 마련한 일정을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들은 12일 저녁에 예정된 워싱턴 특파원 초청 간담회에 참석하는 대신 별도의 특파원 간담회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당의 이 같은 독자 행보에 한반도 문제와 관련한 국내의 다양한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게 없다는 의견도 있으나, 북미정상회담을 보름 앞둔 시점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국회 방미단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 아니냐는 평가도 있다.
워싱턴 교포들을 향한 대표단의 메시지도 엇갈렸다. 문 의장과 대부분의 여야 지도부는 2차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은 물론 어렵게 찾아온 평화의 기회가 한반도에 뿌리내릴 것을 기원했으나, 한국당은 우려를 표시했다. 나 원내대표가 “실질적으로 북한 비핵화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를 먼저 얘기하며 주한미군 철수, 한미연합훈련 축소 등 한미동맹이 흔들릴까 하는 것이 가장 큰 우려”라고 말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는 또 “이번에 국회의장을 모시고 미국에 온 것은 미북정상회담과 관련해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도 있지만, 저희 당이 다른 주장을 하는 것도 있어 전달하러 왔다”고 말했다.
/윤서영 인턴기자 beatriz@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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