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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선거제 개편 감동이 없다

권구찬 논설위원

31년 만에 찾아온 호기임에도

지역할거·금권정치 폐단의 주범

지역구 줄이기는 시도조차 못해

여당 먼저 담대한 결단 내려야





정동영 민주평화당 대표가 선거법 개정을 촉구하며 국회 본청 계단 앞에서 천막 농성에 들어간 지 사흘째인 5일 그의 발언이 눈길을 붙잡았다. “선거제도 개혁은 언론에 달렸는데 예산을 볼모로 몽니를 부린다는 보도에 유감을 표한다.” 야3당이 선거제도 개편을 예산안 처리와 연계한 점을 비판한 것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정치와 경제를 분리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런 반응을 보일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거대 양당은 밀실에서 새해 예산안을 뚝딱 해치웠다. 양당은 실세 의원 지역구 예산을 부풀린 것도 모자라 의원 세비도 1.8% 올렸다. ‘더불어한국당’이라는 비판을 받아도 싸다. 세비 기습 인상은 양당 카르텔을 향한 역풍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었다. 세비를 토해내라는 청와대 국민 청원이 20만명에 육박한 것은 지역주의에 기댄 양당 정치에 대한 불신과 거부감이 얼마나 깊은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여야 5당이 선거법개정 논의에 합의한 것은 소수 야당들의 투쟁 성과만은 아니다. 야합의 자충수도 한몫했다고 봐야 한다.

문제는 선거제 개편 논의가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이는 31년 전 지금의 소선거구제로 전면 전환한 1987년과는 딴판이다. 6월 항쟁으로 쟁취한 소선거구제가 지금은 지역주의와 패권정치를 고착했다는 비판을 받지만 개편 당시에는 집권당에 전국구 의석을 몰아주는 비민주적 선거제를 갈아치우자는 국민의 높은 열망이 반영된 결과물이었다.

모처럼 호기를 잡았는데도 감흥이 없는 것은 정치적 셈법에 신물 나서만은 아니다. 그 누구도 기득권을 내놓겠다는 자기 개혁의 결단이 없기 때문이다. 병폐의 온상인 지역구를 줄이겠다는 시도조차 안 한다. 그것이 개헌보다 힘든 현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시쳇말로 김이 확 샜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여야 공히 19대 대선 공약이었다. 그만큼 대의명분이 앞선다. 비례성을 높이고 사표를 방지하며 망국적 지역할거주의와 금권정치를 줄이는 데 이만한 게 없다. 선거제가 민주화 이후 비례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조금씩 진화해 온 것도 그래서 일 것이다. 이 제도가 언론과 학계 같은 여론주도층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는 데 비해 국민 지지도는 그에 미치지 못한다. 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한 호불호를 물었더니 ‘좋다’는 응답이 42%로 ‘좋지 않다’는 응답 29%보다 많았지만 유보 의견이 29%나 나왔다.



왜 그럴까. 일단 제도가 너무 복잡하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들어는 봤는데 알 듯 말 듯한 표정이다. 의원 정수 확대를 전제한 것도 부정적이다.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 해도 정수 확대는 안 된다는 사람이 열에 일곱쯤 된다. 기득권과 특권을 그대로 둔 채 허구한 날 싸움박질하느라 허송하는데도 머릿수부터 늘리겠다는 것은 국민 정서에 반한다.

다들 ‘87년 체제’를 극복하자며 개헌에 주목하지만 정치개혁의 1차 출발점은 선거법 개혁이다. 개혁이 뭔가. 자신의 몸을 두른 외피가 벗겨지는 고통을 감수해야 가능한 일이다. 힘들고 어렵더라도 지역구를 줄이는 정석대로 가야 한다. 그래야만 87년 체제의 유산인 지역주의와 금권정치가 지배하는 후진적 정치문화를 깰 수 있다.

야3당은 명분만 내세우지 말고 지역구를 줄일 묘책을 짜보시라. 현 정당지지도로는 의석수가 가장 많이 준다는 자유한국당의 현실적 고민을 고려해야 한다. 제1야당이 선호하는 도농통합형 또는 중선거구제를 가미하되 100% 연동형만 옳다 말고 민주당이 거론하는 권역별이나 절충형 비례대표제도 검토해야 할 것이다.

거대 양당에 당부한다. 의원 수 확대에 부정적인 여론을 방패막이 삼아 시간 끌 생각을 접으시라. 국민 핑계 대는 것은 추잡하다. 권력 나누기가 싫다는 게 차라리 솔직하다. 적어도 지역주의 극복을 화두로 던진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의 후예라면 담대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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