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토론회는 전통적인 중독관리 방식과는 대비되는 대안적 모델로서 세계적인 중독관리 트렌드가 되고 있는 위해감축 정책에 대해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식적인 논의를 하는 자리였다. 한국위해감축연구회 회장이자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명예교수인 문옥륜 교수가 좌장으로 토론을 주재하였으며, 발제 2인, 토론 6인이 참여하여 3시간여 동안 열띤 토론을 벌였다.
신상진 의원은 개회사를 통해 “위해감축은 국내에는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중독 치료에 있어 목표를 개방적으로 협의하고 실용적인 방법을 모색하는 접근 방식이다”면서 “국내의 일부 관련 정책들이 ‘모 아니면 도’식의 선택을 강요하는 조급함으로 비난을 받은 사례가 있었는데, 이런 ‘정책조급증’의 폐해를 극복하고 모든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정책을 고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전혜숙 의원은 환영사에서 “각종 위해요소의 감축을 위한 현행 정부 정책의 효과 및 한계 등에 대해 재검토 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제는 중독자의 인권 보호를 바탕으로 단지 위해 요소를 근절시켜야 할 대상자가 아닌 위해 요소들을 줄여나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 발제자로 나선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박영범 교수는 위해감축정책의 개념과 함께 분야별로각국의 위해감축 정책 사례들을 소개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위해감축은 1980년대 HIV의 확산에 따라 중독성이 강한 물질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한 혁신적이고 새로운 접근 방식으로 전 세계에 확산되고 있으며, 모든 위해감축 정책은 근절이 아닌 최소화 또는 감축이 효과적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박 교수는 “위해 감축은 특정 행위를 묵과하거나 비판하는 것이 아닌, 건강 위해 행위 시 동반되는 부정적인 결과와 위험한 행동을 억제하고 줄이는 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서 “또한 중독자의 인권 내지 사회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발제자인 인제대학교 서울백병원 강재헌 교수는 “비만 역시 담배, 음주 등과 유사하게 뇌의 쾌락중추의 자극과 연관 지을 수 있는 질병”이라고 밝히며, “국가 차원에서 위해감축을 위한 환경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가 수준에서 환경에 대한 관리의 일환으로 채소, 과일, 고영양 저열량 식품 생산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비만 유발 소비자 광고를 규제해야 하며, 건강식품 구매 및 대중교통 이용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6명이 참여한 패널 토론에서 첫 토론자인 삼육대학교 보건관리학과 손애리 교수는 “알코올에 있어 ‘금주’보다는 ‘절주’가 현실적 정책 목표로 두어야 한다”면서 위해감축 정책의 필요성에 동의하였다. 하지만 관용적인 국내 음주 문화 때문에 국민 대다수가 고위험 음주를 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당사자들이 음주 위해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하고 절주를 하는 규범을 형성하는 등 국민 건강증진 차원에서의 인식 개선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성균관대 의과대학 강북삼성병원 김수근 교수는 “위해감축 정책이 오히려 위해 행동을 장려하거나 해로운 행위를 방관할 수 있다는 오해가 있다”면서, “위해감축은 찬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사회의 다양한 위해행위에 대한 대안으로 논의 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해로운 담배를 합법화한 가운데 담배와 전자담배를 동일시하며 금연정책을 펴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위해를 줄일 것인가의 관점에서 정부는 더욱 신뢰할만한 데이터를 발표하고, 흡연자들이 위해감축을 위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하여 발제자인 박영범 교수는 세계 각국에서 전자담배의 위해감축 효과에 대하여 인정하고 있고, 영국과 뉴질랜드 등에서는 금연의 도구로 정부에서 권장하고 있기도 하다는 사례를 소개 하였다.
한세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홍문기 교수는 “이미 기존의 사용자?중독자의 완전 금단을 목적으로 하는 제도적?정책적 통제와 처벌은 실효성 논란을 빚고 있다”면서, 대안적 관리 모델로 위해감축 정책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특히 홍 교수는 “위해 감축 방식의 핵심은 점증적 개선과 중재적 노력을 위한 상호작용적 과정인 바, 중독자 또는 중독 예방 당사자와 의사?치료사, 지역사회, 관계기관 간의 다양한 참여와 개선된 관리방식은 기존의 차별적이고 위화감을 기반으로 하는 공무적 중독차단 방식보다 한 단계 격상된 발전적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을지대학교 중독재활복지학화 김영호 교수는 우리나라 성인 8명 중 1명이 중독 문제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이제는 현실적으로 위해감축을 시작할 때가 되었다고 진단했다. 특히 중독은 개인에서 시작되지만 관련된 피해는 사회적 약자에서 주로 경험되어 지고 불특정 다수에서 예측불허하게 발생하는 바, 중독과 빈곤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김준현 대표는 위해감축 정책은 기존과 같이 사용자들의 완전한 금단을 목적으로 한 국가차원의 엄격한 통제나 처벌, 전문가 주도 중심의 중재 방식이 실제로는 위해 해소의 실효성을 담보하지 못한다는 비판적 관점에서 대두된 관리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접근방식에 있어 강압적이기 보다는 촉진적이며 점증적 개선을 추구하다는 점과, 위해감축을 위한 중재적 노력에 당사자 및 지역사회의 참여를 중요한 원리로 삼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의 관리방식과는 상당히 차별적이며 위해에 노출된 당사자의 자발적 노력을 강화해주는 모델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설명했다.
마지막 토론자로 나선 보건복지부 건강증진과 정영기 과장은 위해감축 정책은 우리나라에서는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좌장인 문옥륜 교수는 토론회를 마무리 하면서 “공중의 건강을 위해 위해근절 보다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위해감축의 방향에 대하여 대부분의 참여자가 동의 하였으며, 중독자의 인권 존중을 바탕으로 앞으로 연구회를 중심으로 많은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심층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겠다”고 밝혔다.
/김동호 기자 dongh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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