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계청이 지난해 2·4분기를 경기정점으로 추정하면서 다소 논란은 있지만 국내 경기가 확실하게 하강 국면에 진입했다. 경기 진작을 위해서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겠지만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규제개혁이다. 하지만 규제개혁은 복잡하게 얽힌 이해관계로 당장 실행하기 어렵다. 건설업계가 규제개혁을 통한 혁신성장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첫걸음조차 내딛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부는 7일 노사정 선언식을 열어 ‘건설산업 생산구조 혁신 로드맵’을 발표했다. 로드맵의 주요 내용은 업역규제 폐지, 업종 개편, 등록기준 조정 등이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건설업의 대표적 규제인 종합건설과 전문건설 간 업역규제 폐지다.
국내 건설업계는 지난 40년간 종합건설과 전문건설로 나뉘어 존재해왔다. 이번에 발표된 로드맵은 업역규제를 처음으로 허물어 건설업계를 혁신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동안 개혁에 대한 진통이 컸지만 선제적으로 노사정이 함께 규제개혁에 동참한 것은 의미가 남다르다. 칸막이식 업역규제 폐지는 종합·전문건설업체가 서로의 건설공사를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동안 종합건설 업체는 시공능력이 있어도 전문건설 업체 공사의 원·하도급에 참여할 수 없었다. 업역규제가 폐지되면 시공역량에 따라 자율적으로 공사를 수주할 수 있어 공사의 효율성과 시공품질이 향상되고 종합·전문건설 업계 간 갈등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이 같은 업종개편은 산업의 융복합 추세, 신규 업종의 수요 등을 고려해 내년 상반기 연구용역을 거쳐 개편방안을 확정할 예정이다. 등록기준 조정은 해외 선진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자본금 기준을 경감해 중소건설 업체의 부담을 완화하고 젊은 기술자의 창업을 지원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청년층의 일자리 부족을 해소하는 데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과거에도 건설 업역규제 폐지 시도가 몇 차례 있었지만 이해관계의 첨예한 대립과 복잡한 갈등으로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다. 정부는 이러한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번에는 건설산업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업계·노동계·전문가 등으로 혁신위원회를 구성해 수차례에 걸쳐 폭넓게 의견을 수렴하고 공감대 형성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혁신위를 중심으로 건설산업 전체를 아우르는 충분한 공론화 활동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보여준 민주적이고 선진적 리더십이 어려운 업역규제 폐지에 크게 기여했다.
하지만 업역규제 폐지 등 규제개혁만으로는 부진에 빠진 건설산업의 활성화를 도모하기 어렵다. 건설경기 하강, 공사비 부족, 사회간접자본(SOC)예산 축소 등으로 산업의 대내외 여건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공사물량이 없으면 규제개혁의 효과가 가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에 규제개혁과 함께 생활 SOC 확대, 공사비 정상화, 탄력근로제 확대 등 건설산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정책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아울러 혁신성장을 저해하는 각종 건설규제를 적극적으로 발굴, 개선하는 노력도 이어져야 한다. 아직도 한국의 건설업규제지수가 미국·영국·일본 등에 비해 2배 이상 높기 때문이다.
이번 생산체계 개편은 건설산업에서 최초로 노사정이 규제개혁을 함께 이뤄낸 사례다. 이를 통해 건설산업이 새롭게 도약하고 혁신성장을 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다. 규제개혁의 효과를 살리고 건설산업이 일자리 창출과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도록 활성화 방안까지 수립돼 시행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제는 정부·업계·근로자가 합심해 건설업이 국민에게 사랑받는 4차산업으로 거듭나도록 노력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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