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16억원대 배임 혐의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조 회장 일가가 경비원과 계열사 직원들에게 각종 ‘잡일’을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5일 조 회장의 배임 혐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조 회장 일가의 ‘갑질’ 행태도 알렸다. 한진그룹 계열사이자 조 회장이 공동 대표인 정석기업 직원들은 수시로 자택에 동원돼 집안 잡일을 해야 했다.
정석기업은 경비용역 대금 16억1,000만 원과 자택 시설 유지·보수공사 비용 4,000여만 원을 조 회장 대신 지불한 곳이다. 조 회장이 이 회사의 공동 대표이며 아내 이명희 씨와 자녀들은 사내이사다. 게다가 조 회장이 지분의 20.6%를 가졌다.
정석기업 직원들은 조 회장이 거주하던 종로구 구기동 자택의 배수관을 보수하고 지붕 마감공사 등을 했다. 조 회장 일가가 2013년 1월 종로구 평창동으로 이사하고 나서는 CCTV 설치, 와인 창고 천장 보수, 페인팅 보수 시공, 화단 난간 설치, 보일러 보수에 동원됐다. 이후로도 2016년 5월 정석기업 직원들은 조 회장 손주들을 위해 평창동 자택에 모래놀이터를 만들어야만 했다. 같은 해 6월에는 정원에 마사토 시공을 했다.
조 회장의 평창동 자택 경비원들도 경비 일 외에 ‘잡일’을 했다는 것이 알려졌다. 경비원들은 강아지 산책과 배변 정리, 나무 물 주기, 쓰레기 분리수거·배출을 해야만 했다.
조 회장 일가가 자택 경비원 등을 상대로 한 ‘갑질’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조 회장의 아내 이명희 씨는 경비원에게 전지가위를 던졌다. 자택에서 출입문 관리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 씨는 구기동 도로에서 차에 물건을 싣지 않았다며 운전기사를 발로 차 다치게 한 혐의 등으로 검찰에 넘겨지기도 했다. 또 그는 인천 하얏트 호텔 공사현장에서 조경 설계업자를 폭행하고 공사 자재를 발로 차 업무를 방해한 혐의, 평창동 리모델링 공사현장 작업자에게 소리 지르고 손찌검한 혐의도 받고 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자택 경비용역 대금과 유지·보수 비용 16억5,000만원을 정석기업에 대납하게 해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로 조 회장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다. 경찰에서는 조 회장이 배임 혐의 액수를 모두 정석기업에 변제했고 출석 요구에 응했다는 등의 이유로 불구속 수사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조 회장의 신병은 향후 검찰 수사에서 다시 처리될 것으로 예측된다.
아울러 조 회장은 수백억 원대 상속세를 탈루한 의혹과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 2014∼2018년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때 공정위에 거짓 자료를 제출한 혐의 등으로 서울남부지검에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검찰은 조 회장에 대해 한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됐다. /이다원인턴기자 dwlee618@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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