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경제예측모델의 신뢰도 저하로 점진적이고도 지속 가능한 정책을 추진하기 녹록치 않은 상황인데, 이러한 문제의 중심에 자영업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산업구조 재편 등 자영업을 둘러싼 리스크 환경은 자영업 체질개선을 요구하고 있으나 이는 자영업의 구조개선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 추진체계가 견고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자영업 체질개선의 시발점은 성과가 부진한 정책들을 통해 새로운 교훈을 얻는 데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선행되지 않으면 기존 정책이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적 한계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 중에서도 정부의 경제철학을 담고 있으나 전문성이 결여된 정책, 추진동력을 상실하거나 유명무실한 정책, 현장과 괴리도가 커 실효성 검증이 어려운 정책 등은 정책의 품질관리 프로세스(진단, 설계, 실행, 효과성 검증, 보완)가 부실할 때 발생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 놓여있거나 정책 보완이 필요한 영역들을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금융 측면의 자영업 리스크는 가계부채다. 우리 경제는 금융위기 이후 유례없는 저금리 환경에 노출되면서 민간부채를 덜어내는 부채축소과정(de-leveraging)을 경험하지 못했다. 이러한 치유과정을 거치지 못한 경제는 구조적으로 부채충격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미국 경제가 고강도 채무조정을 거친 이후 강한 복원력을 보여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특히 부채구조 건전성이 취약한 자영업자대출은 구조적으로 가계부채와 맞물려 있다는 점에서 가계부채 문제를 초래하는 트리거로 작용할 개연성이 높다. 올해 2분기 기준 가계부채는 1,493조원인데 중소기업 대출로 분류되는 개인사업자 대출 역시 엄밀히 따지면 가계대출이다. 즉 이를 포함한 실질 가계부채는 1,864조원으로 GDP(국내총생산)에 견줘보아도 100%를 넘는 수준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와 비교해도 절대적으로 높을 뿐만 아니라 증가 속도 역시 소득이나 성장률에 비해 지나치게 빠른 상황이다. 자영업의 부채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자금지원 정책의 한계 효용은 떨어지고 구조조정 압력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가계와 기업부문을 넘나들며 구조화되고 있는 자영업자 대출은 정확한 규모나 형질을 파악하기 어려워 입체적인 분석이 어려운 실정이다. 기관이나 집계방식에 따라 600조원 내외로 추산되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는 대표적인 ‘known unknown’(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 리스크다. 데이터의 정합성과 정보 비대칭 등의 문제로 민간 전문가 그룹은 그저 당국에서 발표하는 통계나 가공 자료에 의존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가장 시급한 문제는 자영업통계를 종합적으로 관리·공유·분석할 수 있는 빅데이터 기반 ‘통합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상시 모니터링이 가능한 체제로 전환하는 일이다. 무엇보다도 도처에 흩어져 있는 자영업 데이터를 한 곳으로 모아야 데이터 기반의 정책 의사결정이 이루어질 뿐만 아니라 현장과 정책 간 괴리를 메울 수 있다. 사람과 조직에 의존하는 정책으로만은 동일한 문제가 시차를 두고 되풀이되는 악순환 고리를 차단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는 산업 측면의 리스크 구조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나라의 생산가능인구(15~64세) 추계는 2017년을 정점으로 하락세로 전환했다. 압축 성장을 주도했던 베이비부머 세대가 경제활동에서 빠져나가면서 자녀세대인 에코세대가 부양해야 할 노령인구는 증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은퇴후 자영업’ 쏠림 현상이 심화되는 배경이기도 하다. 따라서 ‘자영업 편중 산업구조’는 더 이상 피할 곳이 없는 경제 현안이다.
작년 기준 국내 자영업자 수는 취업자에 견줘 약 21% 수준인데 이는 미국(7%)이나 일본(12%)과 단순 비교해도 자영업 공급과잉이 얼마나 심각한지 직감할 수 있다. 자영업 구성에 있어서도 생계형 저부가가치 업종, 부동산·임대 등에 대한 집중도가 높아 경기변동이나 주택가격 충격에 취약하다. 60%를 넘어선 3년 누적폐업률은 셋 중 둘은 3년 이내에 망한다는 의미로 시장을 통한 자영업 구조조정 압력이 점차 높아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재정지원 등 단선적인 대응보다는 자영업의 양적 팽창을 관리하며 질적 구조개선을 유도할 수 있는 연착륙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첫째, 자영업의 산업정책은 진입자의 지속 가능성은 높이되 신규 진입은 줄이는 방향으로 구조개선을 유도해야 한다. 업종별, 유형별 진입·퇴출 로드맵이 부재한 상황에서 폐업지원이나 업종변경 등과 같은 지원책은 정책의 효과성을 높이 평가하기 어렵다.
둘째, 자영업 부실의 원천인 원가구조 문제는 본질적 이익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즉 상가 임대료, 프랜차이즈 소득분배구조 등은 이미 자율조정 기능이 멈춘 시장 실패로 평가할 만하다. 일례로, 임대료의 경우 임차인의 영업활동이 상가의 가치상승에 기여한 증분을 환원할 있는 ‘이득공유’ 개념이 다각적으로 검토될 필요가 있다. 즉 기존의 임차인 간 권리금 이전 방식이 임대인·임차인 간 가치 이전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계약갱신청구권 기한을 10년으로 늘린다고 자영업의 원가구조가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
셋째, 오프라인 지원체제를 ‘오픈플랫폼’ 경제로 전환해 자영업의 경영 효율을 높여야 한다. 구체적으로 구직매칭 플랫폼, 업황분석 플랫폼, 판로매칭 플랫폼, 금융솔루션 플랫폼 등을 통해 시장에서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자생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끝으로 자영업의 체질개선은 창업보다는 고용에 방점을 두는 고용정책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한다. 산업측면에서 자영업 문제는 중소기업 고용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고용의 원천인 중소기업의 고용 확대를 통해서만 자영업의 초과 수요를 흡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재정지원은 정확한 진단과 처방을 통해 자영업의 수요 이전이 가능한 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 적합업종’에 대한 대기업 진입장벽(예: 2,000억 미만 시장)을 높게 세워 자생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자영업 위기는 금융뿐만 아니라 산업, 소득, 고용 등의 정책이 구조적으로 맞물려 있어 일단 발화점에 도달하면 경제를 위협하는 시스템 리스크로 확산될 수 있다. 자영업의 체질개선을 위한 밑그림을 정책으로 녹여낼 수 있는 ‘자영업 컨트롤타워’를 재정립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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