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휴대전화 요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의 2배 정도다. 요금을 40% 정도 낮출 수 있는 여지가 있다” (27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아베 신조 일본 정부가 휴대전화 요금 인하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단말기 판매와 회선 개통·약정을 묶는 요금 체계가 가계에 부담이 된다는 여론을 등에 업은 것으로 우리나라의 ‘단통법(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사태’ 이전과 유사한 모습을 띄고 있다. 일본 정부가 갑작스레 이통사를 때리고 나선 것은 아베 총리의 자민당 총재 3선 이후를 대비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깔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지난 30일 기자회견에서 “공공의 전파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요금이 매우 불투명하며, 외국에 비해서도 높다”고 지적했다. 스가 장관은 지난 21일 이동통신 요금 문제를 제기한 이후 꾸준히 같은 논지의 주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스가 장관은 지난 27일 이동통신 요금 인하의 구체적 방안을 내놨다. △2, 4년 약정 판매 시정 △한 통신사가 판매한 단말기를 유심칩 바꾸어서 사용할 수 없도록 하는 ‘심 락’ 해제 △중고단말기의 유통 촉진이 골자다.
일본 이동통신 요금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약정제가 일반적이다. 휴대전화 비용을 이동통신사가 대폭 부담하는 대신 2~4년 정도의 약정을 붙인다. 이 방식은 2008년 7년 소프트뱅크가 아이폰 3G를 2만3,000엔(약 23만원)의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는 대신 도입하며 인기를 끌었다. 일본 이동통신 시장을 사실상 과점하고 있는 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는 아예 타사의 유심을 바꾸면 단말기를 사용할 수 없도록 ‘심 락’을 걸어놓는다. 문제는 스마트폰 기술 발전에 따라 가격이 폭등하면서 이동통신 요금도 급증했다는 점이다. 총무성에 따르면 올해 가구당 연간 통신·통화료 지출은 10만250엔으로 사상 처음 10만엔 선을 넘겼다.
아베 정부가 이동통신 요금 인하를 압박한 것은 사실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5년 아베 신조 총리가 “휴대폰 요금 등에 대한 가계의 부담을 줄이는 게 중요하다”며 직접 가격 인하를 추진했다. 이에 이통사들은 마지못해 요금인하 계획을 내놨지만 데이터 매출이 증가하면서 매출 성장에 타격이 없었다. 2016년에도 정부 관료들이 요금 인하를 압박했지만 이통사들은 이전과 유사하게 대응했다. 하지만 스가 장관의 이번 압박은 일본 유통업체 라쿠텐이 이동통신 시장 진입을 앞두고 나온 것이어서 주도면밀함이 엿보인다. NTT도코모 등 이동통신 기업 사이에서도 “정부는 이번에는 진심이다”라고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갑작스러운 정부의 통신비 인하 방침은 아베 정권의 정치적 목적이 깔려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다음 달 20일로 예정된 자민당 총재선거에서 지방 표를 모으기 위해서는 통신비를 인하해 분위기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려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내년에는 참의원 선거도 있어 개헌 등 중점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자민당의 지지세를 올리기도 해야 한다.
침체된 소비를 살려야 한다는 경제적 이유도 작용했다. 일본은 내년 10월 현행 8%인 소비세율을 10%로 인상할 예정이다. 아베 신조 정부는 당초 2015년에 소비세율을 10%로 올릴 방침이었지만 증세가 간신히 회복세를 타기 시작한 경기 상승 흐름을 꺾을 수 있다는 우려로 지금까지 두 차례 인상 시점을 연기했다. 하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누적 채무잔액이 200%를 넘는 등 재정건전성이 악화해 세율 인상을 더는 미룰 수 없는 실정이다. 문제는 소비세 증세가 소비 심리 침체를 불러 여전히 바닥 수준인 물가를 더욱 짓누를 수 있다는 점이다. 통신비를 인하하면 여윳돈이 소비로 흘러나갈 것이라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다만 아베 정부의 목표대로 통신비가 인하될지는 미지수다. 통신사들은 2020년에 상용화가 시작될 차세대 통신규격인 5G와 관련한 투자 부담 등을 이유로 요금 인하에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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