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가도로 밑에서 메아리치던 지하철과 자동차가 내달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이제 아이들의 뛰어노는 소리, 그 어머니들의 수다 소리, 은은히 흐르는 클래식 공연 음악 소리가 대체한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운동기구 몇 개 덜렁 놓였던 고가도로 밑 공터가 활기를 띠었다. 동네 놀이터, 기저귀 나눔장터, 여름밤 수다방으로, 때로는 문화센터·공연장으로 변신한다. 막혔던 동네 이야기가 흐르는 이곳, 바로 ‘多(많을 다)’ ‘樂(즐거울 락)’의 ‘다락옥수’ 이야기다.
급격한 도시 팽창에 따른 교통량을 떠받친 고가도로가 이제 때 묻은 콘크리트 흉물로 전락했다. 해체 또는 리모델링이 필요했다. 청계천처럼 갈아엎어 수변공원을 만들거나 서울로7017과 같이 자동차의 자리에 식물을 심어 사람이 거닐게 된 것이다. 다락옥수는 이 가운데 새로운 도시재생의 방법론을 제시한다. 본래 기능을 완전히 치환하기보다는 버려진 유휴공간에 공공성을 부여한다. 단절의 회복과 확장 가능성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도시재생의 유형이다.
◇서울 183개 고가하부공간을 연구하다=그동안 고가도로는 유지보수만 따지는 순전히 엔지니어링의 영역이었다. 그러던 중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에서 이 공간의 다른 활용 방안을 찾아 연구용역 공고를 냈다. 평소 유휴공간의 재생에 관심을 갖던 조진만 건축사사무소 소장이 이 연구에 돌입했다. 지난 2016년 4월 시작해 1년 만에 조 소장과 ㈜에스에이케이 건축사사무소, 조경작업소 올이 ‘고가하부공간 활용사업 타당성 조사 및 종합계획’을 내놓았다.
조 소장은 서울 시내 고가하부공간 183곳을 찾아 전수 답사했다. 약 155만4,679㎡ 넓이로 여의도 면적의 55%, 축구장 210개 크기의 공간이 발굴됐다. 이 중에서도 10%가량만 주차장이나 체육시설로 활용될 뿐 90%는 아무 용도 없이 버려져 있었다. 단순히 쓰이지 않는 효율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었다. 음습하고 버려진 공간이 도시경관을 저해하고 무엇보다 지역을 단절시키고 있었다. 길 건너면 닿을 수 있지만 고가도로 밑 이쪽과 저쪽을 갈랐다.
조 소장은 먼저 시설을 설치할 수 있는 기준을 찾기 위해 현행 제도와 법령을 검토했다. 고가하부공간의 소유 주체는 국가·서울시·자치구·코레일 등 제각기였다. 적용받는 법도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 건축법, 도로법, 도시철도법 등등 다양하게 엮여 있었다. 심지어 이 법규끼리 상호 모순돼 부딪히기도 했다. 이에 법규 제언에 운영 방식까지 디자인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183개 고가도로 중 하부 활용이 가능한 37곳을 추렸다. 이곳을 복층, 단층, 개방형에 역세권입지형, 생활형근접형, 단독입지형, 단독입지 중 창고형 등으로 유형화했다. 37곳을 분석하고 활용 가이드라인을 만든 후에 즉각 시공할 수 있는 대상지 6개를 선정했다. 이문 고가차도, 상봉역~중랑천 고가도로, 옥수역 고가도로, 한남1고가차도, 홍제천 내부순환로, 개봉고가차도 중 가장 협조적인 옥수역 고가도로가 시범사업지로 정해졌다. 사업 기간상 용역 보고서를 기획한 조 소장이 직접 1호 시범사업지를 설계하고 내년 완성을 목표로 한 두 번째 이문 고가차도에서는 심사위원을 맡았다.
◇도시 맥락을 유입해 네트워크 잇기=다락옥수는 2017년 겨우내 공사하고 올해 봄 조경을 마쳐 4월3일 공식 개장했다. 부수고 치장하는 것 말고 다른 도시재생 방법을 고민했던 조 소장의 의도대로 다락옥수는 지역의 도시적 맥락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최소한으로 개입하려 한다.
지하철 3호선 옥수역 7번 출구에서 나오면 큰 관람석과 너른 공간이 행인을 마주한다. 이곳에서 벌어질 공연과 벼룩시장에 대해 행인이 인지성을 갖도록 한 것이다. 반대편은 428㎡ 면적의 조경이 조성돼 있다. 바로 옆 고밀도 아파트와 사찰로부터 녹지가 흘러들어온다. 실내 건물은 상업시설, 근린생활 시설이 위치한 가로변에 맞세웠다. 전체적으로 닫혀 있는 실내공간이라기보다는 안팎이 모호한, 경계를 허물어뜨려 느슨하게 시설이 만들어졌다. 경관을 유입하고 확장하며 가로와 녹지를 확장하는 주제다. 삭막하게 단절됐던 과거 고가하부에 주민들이 흘러들어와 활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디자인이다. 적극적으로 주민을 끌어들이게 탈바꿈한 것이다.
◇스산한 고가도로 밑을 숲 속으로=멀리서나 가까이서나 다락옥수를 압도하는 이미지는 단연 4m 높이에 떠 있는 지붕이다. 연구를 통해 고가하부의 약점으로 분석된 햇빛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설이기도 하다. 5,000개의 분절된 미러판이 물 흐르듯 지붕을 만들고 식생이 심긴 둔덕과 호응한다. 미러판은 높은 고가도로 옆으로 들어오는 빛을 반사해 아래를 밝히면서도 패널 틈으로 직접 고가 사이에 빛을 내려보낸다. 바닥에 푸르른 식생이 반사돼 비친 천장 사이로 일렁이는 햇볕이 마치 숲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숲이라는 ‘메타포’를 따르기 위해 높은 기둥 역시 실감 나는 나무재질과 합성해 제작했다. 숲이라는 이미지가 차가운 철, 딱딱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거대한 구조물의 스산했던 거부감을 완화시킨다.
숲이라는 콘셉트에 맞게 조경과 프로그램에도 식물을 활용했다. 실내공간에 태양의 궤적에 따르는 반사경을 설치하고 사시사철 식재를 키워볼 수 있는 텃밭을 만들어놓았다. 주민이 찾아와 식물을 직접 골라 심어볼 수 있게 했다. 물론 건물 밖의 조경도 마찬가지다. 햇볕을 바로 받지 않아도 자랄 수 있는 음지·반음지 식물을 선택해 고가하부를 활용한 시범사업답게 새로운 식생 환경의 데이터를 누적해보고자 했다.
◇관료주의에 막힌 아쉬움, 주민이 만들어가는 가능성=사실 음지·반음지 식물을 조경해 실험해보겠다는 건축가의 의도는 실현되지 못했다. 다락옥수와 같은 도시재생 사업에만도 공원녹지과·마을공동체과·건축과 등 세 곳으로 허가권이 나뉘어 있다. 실내에 마을공동체과는 시범사업인 만큼 새로운 식생을 도입하는 데 동의했지만 공원녹지과는 쓰던 식생만 쓰겠다고 막아섰다. 새 유형을 만들어가는 시범사업인데 한 번도 안 해봤다는 이유를 들어 실험을 막는 게 관 주도 사업의 한계라는 게 조 소장의 지적이다.
한계가 있지만 건축가가 의도하지 못한 가능성도 보였다. 다락옥수는 성동문화재단에서 주도해 민간의 프로그램 참석으로 운영한다. 문화센터에서 각종 강연 행사도 기획되고 안팎에서 여러 종류의 공연도 벌어진다. 특히 관람석이 아닌 실내공간 입구 계단에서 주로 공연이 벌어지는 모습은 건축가가 의도하지 않은 퍼포먼스였다. 공간 용도를 명확히 해두지 않고 열어둔 공간에 주민이 직접 들어와 재치 있게 실현해가는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이 시작된 것이다.
/이재명기자 now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