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해외 사이트에 접속해 제1금융권에서 발행한 체크카드로 결제·취소를 반복해 수십 억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일당이 검거됐다. 주범은 검거 당시 필로폰에 취해 “마약했냐?”는 경찰 질문에 순순히 마약 투약 혐의를 인정하고 은닉 장소도 실토했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상 사기, 업무방해 등 혐의로 주범 최모(33) 씨 등 3명을 구속해 기소 의견으로 송치했다고 17일 밝혔다. 또 대포 통장을 모집하는 등 범행을 도운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로 모집책 이모(33) 씨 등 31명을 불구속 상태로 경찰에 넘겼다.
일당의 전산책 김모(25) 씨는 이 같은 허점을 지난해 9월 외국 가상화폐거래소 I사이트를 이용하다 발견했다. I사이트에서 결제를 했다가 취소하자 며칠 뒤 체크카드와 연계된 은행계좌로 결제 취소한 대금이 입금된 것이다.
경찰 조사 결과 I사이트는 카드 결제와 관련한 전산 기록을 3~5일 분량으로 모아 국내 은행에 전송했다. 해당 전산 기록을 받은 은행에서는 결제 취소 대금을 오전에 일괄적으로 먼저 입금해주고 실제 결제된 대금이 없으면 오후에 이 돈을 다시 빼가는 식으로 정산이 이뤄졌다. 해당 은행들은 해외 사이트에 체크카드로 결제한 금액을 여행경비로 판단해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먼저 돈을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은행 전산 처리 상의 허점을 이용해 오전에 취소 대금이 들어오면 은행이 인출하기 전 빼내는 수법으로 돈을 가로챘다.
해당 수법을 완전히 익힌 일당은 조직적 범행에 나섰다. 김씨는 조직폭력배이자 주범인 최씨와 친분 관계의 조직폭력배 9명에게 통장 모집 역할을 맡겼다. 이들은 모집책에게 명의자 1명당 100만~400만 원을 계좌를 제공한 명의자에게는 계좌로 입금된 수익금의 10~50%를 나눠주며 공범을 모았다. 이 방식으로 모은 체크카드를 이용해 한 번에 300만~500만 원씩 주문을 냈다가 취소하는 식으로 하루 최대 5억 원의 돈을 빼돌리기도 했다.
피해를 본 국내 은행은 제1금융권 4개사로 지방은행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 은행은 지난해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 34억여 원을 잃었다.
한편 검거 당시 주범 최씨는 필로폰에 취해 횡설수설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약 투약 혐의를 의심한 경찰이 최씨에게 “마약했냐”고 묻자 최씨는 순순히 마약 투약 혐의를 인정하고 주거지 인근에 숨겨둔 마약 위치도 실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 결과 드러난 결제 시스템의 문제점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금융감독위원회에 시스템 개선을 요청했다”며 “범죄 수익금으로 사들인 고급 외제차량 등은 임의처분이 불가능하도록 몰수보전 조치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도주 중인 공범 17명을 좇고 있다.
/서종갑기자 ga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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