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을 공식 철회한 것은 어려운 경제 현실을 반영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최저임금 급등에 따른 불만을 강하게 호소하고 있고 산업 부문 역시 반도체를 제외하고는 전 분야가 내리막을 걷고 있다. 문 대통령의 청와대는 그동안 경제 문제를 ‘이념적 잣대’로 보는 모습을 드러냈는데 최저임금 부문에서는 어느 정도 시각교정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실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지난달 “정부의 정체성과 방향을 흔들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자기 방식대로 해석하고자 한다”고 말하는 등 경제 문제를 보수와 진보 간 갈등 등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경제정책과 관련해 이념 잣대에서 벗어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아울러 최저임금 급등은 대통령 공약에 의해 발생한 논란이므로 직접 사과를 함으로써 문제를 풀어갈 의지를 나타냈다고도 해석할 수 있다. 지난 14일 새벽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결정된 후 청와대는 “관련 입장은 기획재정부 등 관련 부처에서 나갈 것”이라며 뒤로 숨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런 태도로는 경제주체 모두가 반발하는 현 상황을 풀어갈 실마리를 찾을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직접 사과함으로써 각계의 불만을 풀 발판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전임 대통령들도 공약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함으로써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고리를 만들곤 했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은 ‘한반도 대운하’와 ‘노령연금 100% 지급’ 공약을 100% 지키지 못하게 됐다며 사과한 바 있다.
이 외에도 2020년부터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없다고 경제주체들에게 정부 정책을 예고했다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 현재 자영업자·프랜차이즈 점주 등은 최저임금이 2년 연속으로 대폭 인상되자 본격적으로 무인주문기기(키오스크)를 구입할 채비를 하고 있다. 경제주체 입장에서는 2년 연속 오르는 최저임금 때문에 기계 구입을 통해 한번에 목돈이 들더라도 인건비를 아끼자고 판단, 키오스크를 들일 수 있다. 최저임금 속도조절을 할 테니 고용을 유지해달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볼 수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내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타격을 막기 위해 관련 정책을 총망라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일자리안정자금뿐 아니라 상가임대차 보호, 합리적인 카드 수수료와 가맹점 보호 등 조속한 후속 보완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또 근로장려세제 대폭 확대 등 저임금 노동자와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주는 보완대책도 병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국민의 혈세로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막는 것이어서 이 부분에 대한 논란은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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