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책꽂이-판타지랜드]'허풍쟁이' 트럼프가 지배하는 '환상의 나라'

■커트 앤더슨 지음, 세종서적 펴냄

믿고싶은대로 말하는 트럼프에

환상 즐기는 미국인들 표 쏠려

진짜같은 가짜 득세한 美사회

500년史 분석 통해 위기 진단







“50%는 완전히 틀린 말, 다른 20%는 거의 틀린 말이었다.”

팩트체크 전문기관이 도널드 트럼트의 후보 시절과 대통령이 되고 나서 해온 400개의 사실 진술을 검토해본 결과 트럼프의 말 대부분은 틀린 것이었다. 대통령이 되고 난 뒤 그는 하루 평균 4개 이상의 거짓말이나 ‘잘못된 주장’을 했다.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환상에 불과한 말을 지어댄 트럼프는 어떻게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트럼프의 거칠고 비도덕적인 실제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꼈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죄인 같은 그의 태도는 그가 정직한 사람이라는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지금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들이 득세하고 사실이 무엇인지 보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믿는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대체 어떻게 해서 우리가 트럼프를 만나게 되었는지를 기막히게 총정리해놓은 책”이라는 MSNBC 뉴스의 평처럼 미국의 저명한 문화비평가인 커트 앤더슨의 신작 ‘판타지랜드’는 어떻게 트럼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는지 미국의 500년 역사를 통찰력 있게 분석한다.

저자는 오늘날 미국 사회가 뒤틀린 자유주의와 독선적인 개인주의로 치달으면서 전례 없이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고 진단한다. 그는 현실과 환상, 진실과 거짓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진 미국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해부한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미국인 3분의 2는 진짜 천사와 악마가 이 세상에서 활약 중이라 믿고, 3분의 1은 최근에 외계인이 지구에 왔다고 믿는다. 저자는 주관적 신념에만 의존해 판단하고 자신의 믿음과 다른 현실은 외면해 버리는 사람들을 ‘환상 기반 공동체’라고 칭하고, 이런 사람들이 다수인 미국 사회를 ‘판타지랜드’로 명명한다.



책은 미국인들의 이런 태도와 정신적 습성의 기원을 찾기 위해 500여 년의 북미 대륙 역사를 훑어내려 간다. 저자는 1517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개인의 자유와 믿음을 강조하는 새로운 기독교가 탄생했고, 여기서 미국적 태도의 발판이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여기에 금을 찾아 북미 대륙으로 건너온 투기꾼과 모험적 사업가, 사기꾼과 허풍쟁이가 가세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자기가 믿고 싶은 것을 믿는 데 능하다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번영은 미국인들에게 판타지에 탐닉할 수 있는 여유를 줬다. 세계 시장을 장악한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판타지에 매달리는 미국인들이 지닌 재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어느 시점부터 균형추가 기울게 됐고 종교와 유사종교, 환상이 이성과 합리주의를 압도하게 됐다. 저자는 1990년대에 환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균형이 본격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들어 지금과 같은 판타지랜드가 완성됐다고 본다. 총기에 대한 미국인들의 강박적 집착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낳은 미국 경제의 비이성적 과열 뒤에도 현실을 무시하는 환상주의가 자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은 판타지랜드를 강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새로운 미디어 환경은 거짓 정보에 대한 대중의 면역력을 떨어뜨리고 판단력을 흐린다. 이를 틈타 가짜뉴스가 판치게 됐다.

저자의 어투는 신랄하고 어떤 때는 조롱조에 가까운데, 이는 미국 사회에 대해 느끼는 위기감이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생애 처음으로 미국이 혼란과 쇠퇴의 길로 완전히 접어든 건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게 된다”는 것. 저자가 지적하듯이 판타지랜드 현상은 미국만의 운명이 아니라 다른 모든 나라도 결국에는 그대로 따르게 될 길일지 모른다. 이미 한국의 정치와 종교, 미디어와 SNS 세계는 놀랍도록 미국을 닮았다. 지금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할 이유다. 2만 5,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경 마켓시그널

헬로홈즈

미미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