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각종 대책과 해결방안이 쏟아져 수습되는 듯하다가도 어느 틈엔가 새로운 갑질이 등장한다. 갑질의 더 큰 문제는 최근 언론의 주요 이슈로 등장하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 등 소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바뀌지 않은 현실에 바뀐 것은 국민들의 태도다. 국민들은 더 이상 참지 않는다. 일부 재벌 2, 3세들의 비상식적인 갑질에 억눌려 있지 않고 공정사회를 열망하는 요구를 적극적으로 분출한다. 갑질 근절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다행히 공정사회를 바라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정부는 연이어 공정화 대책을 내놓고 있다. 가맹·유통·하도급거래 등 분야별 대책에는 갑질 근절뿐 아니라 대기업의 보복조치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 기술탈취 근절, 납품단가조정협의권 개선 같은 중소기업계의 오래된 건의사항도 반영됐다. 더욱 희망적인 것은 재벌·갑질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과 저성장·양극화 같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해소, 4차 산업혁명 등 빠르게 변화하는 경영환경을 반영하기 위해 지난 1980년 제정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의 전면적 개편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소기업인들은 공정거래법 개정에 거는 기대가 크다.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갑질을 근절해 대기업에 집중된 경제력을 해소하고 다방향 네트워크 시대에 맞춰 중소기업 간 공동사업이 활성화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마련되기를 바란다. 이러한 근본적인 개정작업은 성장의 한계에 직면한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중소기업 중심으로 탈바꿈시키는 전환점이 될 수 있기 때문에 한국 경제에 주어진 소중한 변화의 기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기 위해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와 실질적인 역할이 없는 계열사 끼워넣기(일명 통행세)만큼은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 이는 총수 일가의 편법승계 수단으로 활용되고 중소기업의 공정한 사업기회를 박탈하는 불공정의 대표사례다.
일부 대기업들은 지분율까지 낮춰가며 내부거래를 시도하고 있다. 실제 사익편취 규제 대상의 내부거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총수 2세의 지분율이 높을수록 내부거래 비중은 급격히 커지고 있다. 이는 재벌 일가가 일감 몰아주기와 부당 지원행위를 통해 경제력 집중을 심화시키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대기업의 갑질 근절도 절실하다. 공정거래법상 대표적 갑질로 규정되는 거래상 지위남용과 보복조치 행위에 대해서는 형사적·민사적·행정적 규율수단을 마련해 강력히 규제해야 한다. 최근 논의가 활발한 전속고발제의 경우 전면폐지보다는 우월적 지위남용과 경제력 집중에 한해 선별적으로 폐지할 필요가 있다. 이번 논의에서 빠져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나 사인의 금지청구권 등 민사적 규율수단과 과징금 등 행정적 규율수단도 함께 논의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공정한 시장환경 조성과 더불어 혁신을 통해 전진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의 공동사업 활성화도 중요하다. 대기업에 비해 자본과 인력이 열악한 중소기업은 공동구매·판매 사업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이(異)업종 간 교류 활성화를 통해 혁신성장을 도모한다. 하지만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이런 행위들이 부당한 공동행위로 간주될 여지가 높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핵심이 협업과 네트워크 활성화인 만큼 이번 법 개정에서는 중소기업이 협동조합을 통해 추진하는 합법적 공동사업이 소비자의 이익을 저해하지 않는다면 공정거래법 적용을 배제할 수 있는 명시적 규정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전면적인 대수술은 어렵다. 오래 걸리고 이해관계자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효과는 대단할 것이다. 40여년 만에 이뤄지는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이 우리나라 공정경제의 초석이자 혁신성장의 발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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