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고영한 대법관과 ‘원세훈 전 국정원장 재판거래 의혹’ 등 문건을 작성한 정다주 전 행정처 기획조정실 심의관(현 울산지법 부장판사)이 사용한 PC 하드디스크를 제출하라는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신자용)의 요구를 최근 거부했다. 고 대법관은 현직이라는 것이, 정 전 심의관은 서울중앙지법 재직 시절에 사용한 PC라는 것이 이유였다.
행정처 사법정책실·사법지원실 등에서 작성한 자료도 이번 사건과 무관하다는 이유로 검찰에 넘기지 않았다. 오로지 기획조정실 자료만 증거물이 될 수 있다는 ‘셀프 원칙’ 때문이다. 사법정책실은 양승태 사법부의 숙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추진의 주무부서였고 사법지원실은 ‘원세훈 댓글 재판’ 등 여러 의혹 문건을 작성한 조직으로 알려졌다.
행정처는 법관 사찰의 물증일 수 있는 인사기록과 대법관 관용차량·업무추진비 사용내역, 내부 메신저·e메일 기록 등도 개인정보 유출 등의 이유로 제출하지 않았다.
검찰 조사에 미온적인 법원의 태도는 사실 수사 초기부터 이어졌다. 검찰은 지난달 수사에 돌입하면서 핵심증거인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의 PC 하드디스크를 통째로 요구했으나 법원은 이를 거절했다. 심지어 하드디스크를 복구불능 상태로 만들었다며 수사기관의 힘을 뺐다. 첫 임의제출 당시 법원이 제출한 자료는 410개 파일 등 극히 일부에 그쳤다. 양 전 대법원장의 백업파일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다 지난해 9월 대법원장실로부터 백업 완료를 통지받았다고 뒤늦게 밝혔다.
법조계에서는 법원이 검찰 수사를 거부하는 모양새를 계속 취하면 현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달 15일 “모든 인적·물적 자료를 제공하는 등 필요한 협조를 마다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법원의 대응은 국민 눈높이와 너무 다르다는 분석이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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