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와 함께 영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찰스 디킨스는 런던을 너무 오랫동안 떠나 있으면 글을 쓰기 어려웠다고 한다. 런던을 자신의 ‘마법의 등’이라고 불렀던 그는 일단 소설을 구상하면 “이야기의 바탕으로 삼고 싶은 풍경을 찾으러” 런던 시내로 나갔다. 디킨스는 대부분 시간을 런던에서 지내며 런던의 인물들과 런던이라는 도시에 내재된 공포와 고통을 주로 그렸다. 불결한 생활환경, 6~7세 아동이 시달리는 전일제 노동, 전염병과 영양실조로 죽어가는 사람들 등을 눈으로 확인한 디킨스는 이를 토대로 ‘올리버 트위스트’ 등을 펴낼 수 있었다. 무엇보다 디킨스가 직접 말했듯이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등장인물은 런던이라는 도시 그 자체”였다.
디킨스뿐 아니라 런던의 영향을 받은 영국 작가들은 일일이 손에 꼽기 어려울 정도다.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런던에 대해서 그다지 많이 쓰지는 않았지만 “런던은 그의 집이자 삶의 터전이었고 영감의 원천”이었고, 조앤 롤링은 해리 포터 시리즈의 배경을 런던으로 해 해리포터가 호그와트행 급행열차를 탔던 ‘킹스 크로스역’이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기차역이 되기도 했다. 버지니아 울프를 비롯한 블룸스버리 그룹 멤버들이 모이던 장소,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극이 올려지던 웨스트엔드 극장가, 첩보소설의 배경이 된 카페, 술집, 호텔, 역사 깊은 출판사와 서적상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이 바로 런던이다.
영국의 작가·출판인이 함께 쓴 신작 ‘문학의 도시, 런던’은 런던의 역사와 문화, 문학계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총 21개의 테마로 나누어 보여준다. 영국의 기틀을 마련하고 초창기 문학의 후원자 역할을 한 앨프레드 대왕, 제프리 초서와 셰익스피어 같은 불멸의 작가들부터 마르크스와 엥겔스 같은 급진주의자, 낭만파들의 사랑과 미스터리한 죽음, 범죄소설과 아동문학의 대가들, 여성운동가들, 히피족과 첩보소설 작가 등 다채롭고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가득하다. 책은 단순히 문학적인 사건에 국한되거나 백과사전적 지식을 나열한 것이 아니고 정치·역사적 시대상황도 자연스럽게 연결돼 지루하지 않다. 그런 만큼 책에 런던 출신의 영국인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 출신의 카를 마르크스가 영국 국립도서관 L13 좌석에 앉아 <자본>을 썼고, 소호의 딘 스트리트에 위치한 친구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집에서 맘껏 먹고 마신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책에는 그들의 활동과 흔적이 남아 있는 실제 장소의 주소, 지도도 함께 소개됐다. 지도를 따라 그들처럼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고 음식을 맛보고 살던 곳을 둘러볼 수 있다.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스 시리즈 팬이라면 홈스와 왓슨이 즐겨 찾았던 ‘심슨스 인더 스튼랜드’라는 식당을 실제로 방문해 옛날식 그대로의 영국음식을 즐길 수 있다. 신작은 런던을 구석구석 알차게 여행할 수 있는 재미있는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들은 런던 곳곳에 숨어 있던 문학, 작가들과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를 찾아내고 그들만의 위트와 유머로 버무려낸다. 18세기 영국 지성을 대표하는 문인 새뮤얼 존슨이 “런던이 지겨운 사람은 인생이 지겨워진 사람”이라고 말한 것처럼 저자들은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저자들이 생생하게 그려낸 유쾌한 런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1만 6,5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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