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독립운동 역사가 참 많잖아요. 92년 전 6.10 독립만세운동도 그 대표적인 한 예죠. 국가가 아닌 학교(중앙고)가 주관해 기념식을 하고 있으니 그 학교는 높이 평가할만 하지만 우리 스스로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예요.”
심덕섭(사진·55) 국가보훈처 차장(차관급)은 6.10 독립만세운동 92주년인 10일 서울의 한 식당에서 기자와 만나 “6월 10일 하면 1987년 독재타도를 위한 6·10 민주항쟁 기념일이라는 것은 많은 분들이 알지만 6.10 독립만세운동을 떠올리는 분은 별로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6.10 독립만세운동 기념식은 서울 종로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학교 대강당에서 개최돼 왔다. 서울시 교육감과 국가보훈처 북부보훈지청장이 외부 인사로 축사를 해왔으나 손님 자격이었다. 중앙부처에서는 참석하지 않았다. 당시 중앙고보 학생들이 만세독립운동에 적극 나서 중앙고에서 기념식을 한다고 하지만 당시의 역사적 독립운동을 국가가 챙기지 않은 결과다.
심 차장은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어 지난 8일 중앙고에서 열린 92주년 6.10만세운동 기념식에 참석했다”며 “학교와 학생들이 온 정성을 다해 다채롭게 준비한 기념식이라 마음은 넉넉했지만 국가 차원에서 기리는 게 아니어서 안타까움이 컸다”고 털어놨다. 앞으로 6.10 독립만세운동을 하루 빨리 국가기념일로 지정하고 기념식도 국가보훈처가 직접 주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는 1926년 6.10 독립만세운동이 1919년 6개월여 전국적으로 들불처럼 번진 3.1 독립만세운동 규모에는 미치지 못 하지만 당시 침체됐던 독립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조선민중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에 기인한다. 역사학계에서는 6.10 만세운동이 대한민국 임시정부나 만주·연해주의 독립운동 세력에 용기를 북돋우고 민족주의·사회주의 합작 독립운동단체인 신간회 창립으로 이어지는 등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본다.
실제 6.10 독립만세운동은 순종의 인산일(因山日·황제와 왕 등의 장례식 날)에 창덕궁에서 홍릉까지 이어지는 가두에 2만 4,000여 명의 학생을 비롯해 많은 조선 민중이 나와 애도하는 상황에서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된 가운데 진행됐다. 사회주의 계열과 천도교 측이 일제의 식민통치를 규탄하고 독립의 정당성을 밝힌 격문 수 만 부를 준비했다가 사전에 발각돼 체포되고 압수당했으나 중앙고보, 연희전문, 보성전문 등의 학생들이 또 다른 루트로 격문을 준비해 수만 부를 뿌리며 수많은 민중의 호응을 이끌었다.
당시 기개있는 많은 학생과 민중이 일제 경찰과 군대의 삼엄한 감시 속에서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났으며 고창·전주·순창·군산·개성·원산·평양·정주·홍성·공주·당진·강경·울산·하동 등으로 파급됐다. 6.10 독립만세운동은 이후 1929년 11.3 광주학생 독립운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심 차장은 “문재인 대통령께서 지난해 8월 국가보훈처 업무보고에서 ‘3.1운동 기념식에 비해 6.10 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은 정부에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6.10 만세운동 기념식은 학교 차원의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며 정부의 각별한 관심을 주문하셨다”며 6.10 만세운동의 정당한 역사적 평가를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에서 잔뼈가 굵은 심 차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국 프로젝트 매니저와 주캐나다한국대사관 공사 등 9년 간의 해외경험을 통해 선진국일수록 국가를 위해 헌신한 분들을 잘 모신다는 것을 절감했다며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를 만드는데 앞장서겠다고 의지를 보였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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