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오늘의 유머’ 사이트 ‘공포게시판’에 ‘복날은 간다’라는 아이디를 쓰는 이가 처음으로 짧은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재밌다’는 사람들의 댓글에 힘을 얻은 그는 꾸준히 글을 쓰기로 마음먹는다. 2~3일에 한 번씩 글을 썼다. 그렇게 쓴 글이 무려 300편 이상. 지난해 말에는 단행본으로 출간돼 7쇄까지 찍었다. 놀라운 점은 그가 글쓰기 공부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는 고졸 검정고시 출신의 성수동 주물공장 노동자라는 것. 바로 김동식 작가의 이야기다.
최근 서울 종로구 트윈트리타워 서울경제신문 사옥에서 만난 그는 “처음부터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글을 쓸 무대를 찾은 게 아니고 그 무대에서 활동하기 위해 글을 쓴 것’이라는 그는 “‘오늘의 유머’ 사이트의 ‘공포게시판’에서 미스테리한 글을 보는 게 취미였는데 용기 내 글을 한 번 쓰게 된 후 그 사이트 유저들의 댓글과 관심으로 글을 계속 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댓글로 달린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맞춤법 지적에서부터 캐릭터의 행동이 이해가 안 된다, 개연성이 안 맞는다는 등 글에 대한 의견까지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극한의 상황에서 사람들이 모두 식인만 선택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댓글을 본 후로는 식인 소재를 사용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작가라면 보통 본인의 의견을 고집할텐데 왜 댓글에 달린 의견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손해 보는 것은 없었다”며 “중학교를 중퇴하고 공장을 다니면서 검정고시를 한 나 자신은 ‘백지’였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다 맞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다 맞았다”고 겸손을 표했다.
무인도 표류, 환생, 로또 당첨 등을 소재로 생각지 못한 에피소드를 풀어내는 그는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을까. 그는 “10년 이상 공장생활에서 얻은 잡생각이 글의 원천이 됐다”고 했다. 오랜 시간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거의 없이 벽을 보고 하는 단순 작업을 하면서 혼자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환생은 과연 미래에만 발생하는 걸까’ ‘평생 한 가지 음식만 먹는다면 무엇을 먹을까’ 같은 황당하고도 기발한 생각들이 이어져 소설로 탄생할 수 있었죠.”
사이트에 글을 꾸준히 쓰다가 책까지 낸 그는 “한 명이라도 봐주는 글을 쓴다면 누구나 작가”라고 말한다. 블로그든 사이트든 글을 쓰는 곳 상관없이 누군가 글을 봐준다면 작가라는 주장이다. 그는 “예능 프로그램도 하나만 있는 것보다 여러 개 있으면 자기 취향에 맞게 고를 수 있고 즐길 거리가 많아지지 않느냐”며 “작가가 많아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글을 쓰고 싶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즐겁게 막 쓰고 막 보여줘야 한다고. 너무 자기 검열을 심하게 하지 말라고 말이다. 최근 카카오페이지에서 글을 연재하고 있는 그도 ‘초심을 잃었다’는 댓글을 보며 이를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생각지 못하게 진행되는, 예상을 벗어나는, 재밌는 글을 쓰고 싶다는 그가 앞으로 또 어떤 작품을 만들어낼지 궁금하다.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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