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중반 이후 북한과 미국은 핵 포기와 수교를 교환하기 위해 끊임없는 샅바 싸움을 벌였다. 수교는 북한이 그토록 원하는 체제 보장의 최종 단계다. 이 때문에 더 강한 협상 카드를 손에 쥐기 위해 핵 무력 고도화에 모든 것을 걸었다. 얼마 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는 ‘북미 수교를 위한’이라는 전제가 빠져 있다고 보면 된다.
반대로 미국은 벼랑 끝 전술을 펼치는 북한을 믿지 않았다. 강온 양면의 태도도 못마땅하게 생각했다.그 때문에 대화 무드가 조성되더라도 “외교·군사적 압박을 강화해 무릎을 꿇리는 편이 낫다”는 강경론이 매번 더 큰 힘을 얻었다.
실제로 북한과 미국은 핵과 수교를 거래하기로 몇 차례 약속했지만 결과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지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때는 북한이 핵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은 3개월 이내에 북미 수교 협상 테이블을 차리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진행은 지지부진했고 결국 미국은 2001년 제네바 합의를 파기했다.
2005년의 9·19 북미 공동성명 때도 양측은 비핵화, 수교,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바로 그다음 날 미 재무부는 마카오의 방코델타아시아(BDA)에 있는 북한 예금 2,500만달러가 위조 달러 거래로 생긴 돈이니 동결하라고 BDA에 요구한다. 분노한 북한은 핵 활동을 재개해 1년 뒤 1차 핵실험을 한다.
2009년 2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북한과 비핵화, 수교, 평화 협정을 패키지로 딜하겠다”며 대화를 재개하겠다고 밝힌다. 그러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주요2개국(G2)으로 부상한 중국을 압박하는 데 북핵이 유효한 카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역발상을 한다. ‘동북아의 헤게모니를 유지하는 빌미로의 북핵’에 주목한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전략적 인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처음에는 힘으로 굴복시키는 것만이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이른바 ‘맥시멈 프레셔’, 즉 최대한의 압박 전략이다. 그러나 북한은 강대강으로 나왔고 상황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오죽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은 풀을 먹으면서라도 핵 개발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을까.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대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은 수교라는 반대급부를 줘야만 북핵 문제가 풀린다는 점을 깨달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현재 트럼프는 과거 정부가 못했던 ‘빅딜’을 멋지게 성사시켜 보이겠다는 의욕이 강하다.
그러나 트럼프를 둘러싼 미국 내 환경은 매우 어렵다. 무엇보다 미국 주류 사회가 트럼프의 행보에 대해 “재선과 노벨상을 위한 쇼에 불과하다”며 냉소를 보낸다. 트럼프는 오랜 시간 TV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며 ‘극적 효과’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게 된 사람이다. ‘쇼한다’는 지적이 그렇게 틀린 말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그렇지만 한국의 입장은 다르다. 정말 모든 것이 쇼라고 해도 회담이 성사돼야만 희망이 생긴다. 핵 없는 한반도, 남북이 각자 번영을 추구하는 미래에 다가서려면 북미가 만나야 한다. 쇼 머스트 고 온. 싱가포르로 가는 롤러코스터가 멈추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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