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을 탈 것만 같았던 북미 정상회담이 비핵화 방법론을 놓고 기싸움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미국은 회담 날짜와 장소 발표가 임박해지자 ‘완전한’ 표현에 더해 ‘영구적인’ 비핵화를 요구하며 압박하고 있고 이에 북한은 반발하고 나섰다.
방아쇠는 새로 진용을 갖춘 미국 외교안보 사령탑들이 당겼다. 지난 2일(현지시간)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취임사를 통해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를 뜻하는 ‘PVID’를 북핵 문제 해결 원칙으로 제시했다. 4일에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야치 쇼타로 일본 국가안전보장국(NSC) 국장과 회담을 하고 양국의 공동 목표가 핵무기·탄도미사일·생화학무기 등 북한이 보유한 대량파괴 무기와 관련 프로그램을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폐기하는 것임을 재확인했다.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이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해 ‘영구적’이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셈이다. PVID라는 용어는 이전에 미국 정부가 북측에 요구했던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와 비교해 비핵화 강도가 더 센 것으로 풀이된다.
정부의 한 고위당국자는 “PVID와 CVID가 결과적으로 같은 의미인데도 굳이 폼페이오 장관이 ‘영구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데는 향후 북미 정상회담을 통해 마련될 협상 테이블에서 북핵 문제에 대해 끝장을 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대북 압박 메시지는 미국 입법부에서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맥 손베리 위원장은 6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자국에 대한 제재를 약화시키고 한미동맹을 분열시키기 위해 현재 위장평화 공세를 펴는 것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같은 날 공화당의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김정은(북한 국무위원장)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일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비핵화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고 장난을 치려는 것”이라며 “만약 그렇게 한다면 북한 정권의 종말이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북측도 맞받아쳤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6일 조선중앙통신사와 가진 문답에서 “미국이 우리의 평화 애호적인 의지를 ‘나약성’으로 오판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과 군사적 위협을 계속 추구한다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또 “최근 미국이 북남 수뇌회담에서 채택된 판문점 선언에 밝혀진 우리의 조선반도 비핵화 의지와 관련해 그 무슨 제재·압박의 결과인 듯이 여론을 오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북한은 상대국 정상을 직접 언급하지 않는 등 수위는 조절하고 있다. 모처럼 마련된 북미 정상회담의 큰 판은 깨지 않으려는 차원으로 보인다./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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