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이례적으로 “평화협정 체결과 주한미군 철수는 관련이 없다”고 직접 정리하고 나선 것은 불필요한 오해의 싹을 초장부터 잘라버리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 대통령이 거듭 밝혔듯이 한반도는 지금 ‘기적 같은 기회’를 맞고 있다. 우리는 정권 초라서 대북정책을 적어도 4년간 일관되게 가져갈 수 있고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도 한반도에서 구체적 성과를 원한다. 북한 역시 경제 재건이 절실해 남북미 3개국의 이해관계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쉽게 오지 않는 중대 시국에 국내 보수층이 반발할 수 있는 사안을 깔끔하게 정리해 평화 구상 동력을 유지하려는 조치로 해석된다.
‘판문점 선언’의 원활한 국회 비준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서는 북한 철도 현대화 등 돈(재정)이 필요하므로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은 필수적이다. 당장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에서 문정인 통일외교안보 특보의 발언을 비판하고 나서자 이는 문 대통령의 뜻과 다른 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며 국회 비준의 길을 트려는 의도도 있다.
서울경제신문 펠로(자문단)인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미국에도 주한미군은 평화협정 체결 후에도 주둔한다는 분명한 신호를 줘 한미동맹에 균열이 없다는 것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봤다. 미국 입장에서는 문 대통령의 외교안보 전략을 대변하는 문 특보의 발언을 문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아울러 북미회담 등 릴레이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일 간 정책 엇박자는 없다는 점도 분명히 한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평화협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는 협상 대상이 아니라는 점을 사전에 ‘가이드라인’ 격으로 제시했다고도 볼 수 있다. 추궈훙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달 서울경제신문이 주최한 ‘한반도 경제포럼’에서 “중국은 한반도 평화 구축 과정 때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한반도 평화체제가 구축된 상황에서 주한미군이 그대로 주둔하는 것을 중국이 반길 가능성은 적다. 극단적으로 중국이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고 나설 수 있는데 그때를 대비해 분명한 우리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주한미군 철수는 북한도 요구하지 않는 사안이다.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은 저서 ‘피스메이커’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차 남북정상회담 때 ‘북한도 주한미군 철수를 원하지 않는다. 주한미군 철수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북한 내 민심을 고려한 정치적 수사’라고 말했다”고 적었다. 문 대통령도 지난달 19일 언론사 사장단 간담회에서 “북한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며 “주한미군 철수라든지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조건을 제시하지도 않는다”고 전했다.
한편 문 대통령이 주한미군 감축 및 성격 변화에 대해서는 특별히 언급을 하지 않으면서 향후 철수는 안 하더라도 축소나 평화유지군으로 성격 변경 등은 염두에 두고 있다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이날 문 대통령은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라며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단 두 마디 입장만 내놓았다.
문 특보는 지난해 6월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한미연합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며 지나치게 앞서 가는 발언을 했다가 청와대로부터 공개 경고를 받았고 이번에는 사실상 문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경고를 받았다. 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는 “문 특보가 대통령 특보인지 김정은 특보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태규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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