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1일 청와대가 발표한 경제 분야 개헌안은 공개된 직후부터 지금까지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토지의 소유와 처분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절히 제한할 수 있다는 ‘토지공개념’이 개헌안에 담긴 탓이죠.
정치권은 물론 경제, 사회 모든 분야에서 토지공개념이 개헌안에 포함된 것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과 개인의 재산권을 지나치게 침해하는 ‘사회주의 헌법’이라는 비판이 공존하는 상황입니다.
[영상]초등학생도 이해하는 토지공개념의 모든 것(feat.모래놀이) |
토지공개념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미국의 경제학자인 헨리 조지(Henry George)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본인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우리는 토지를 공공의 재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죠. ‘공공의 재산’, 얼핏 너무 급진적인 주장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마치 토지를 모두 몰수한 후 개인에게 빌려주는 형태인 ‘토지국유화’로 보일 수 있죠.
하지만 둘은 전혀 다른 이론입니다.
토지는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자 기반입니다. 우리 삶의 필수 3요소인 의· 식·주는 모두 토지를 기반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이죠. 토지가 없으면 옷을 만들 때 필요한 재료를 얻을 수 없습니다. 토지가 없으면 땅에서 나는 곡식도, 가축의 고기도 먹을 수 없겠죠. 집을 지을 수도 없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의 원인이 대부분 토지 소유와 연결돼 있는 이유입니다. 그만큼 토지는 우리에게 중요한 가치인 셈이죠. 그런 토지를 공공의 재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대체 무슨 의미일까요.
토지는 분명 우리에게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토지 자체가 스스로 무언가를 생산하는 것은 아닙니다. 토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소득은 그 곳에 투하된 노동력의 결과물이기 때문이죠. 토지를 갈고 씨를 뿌리고, 수확하는 모든 행위가 우리의 노동력을 필요로 합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합니다. 토지 자체의 가치가 노동력의 가치보다 높게 평가되면서 소득의 불평등이 생겨나는 거죠. 예를 들어 볼까요. 100평 정도 되는 땅의 주인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의 땅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있죠. 토지는 제한적이기 때문에 그 가격이 계속 오릅니다. 토지 주변에 사회 기반 시설 등이 들어서고, 입지가 좋아지면 오름세는 당연히 더 급격해집니다. 원래는 3억원 하던 땅의 가격이 1년 후에는 4억원, 2년 후에는 5억원으로 올랐다고 치죠. 노동자의 임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반면 노동자의 임금은 토지의 가격처럼 급격히 오르지 않습니다. 땅의 주인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땅을 소유했다는 이유만으로 재산이 불어나는데 노동자는 그렇지 않죠. 빈부격차가 점점 심해지는 겁니다.
토지공개념은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토지에서 얻는 불로소득의 일부를 공공의 것으로 가져오자는 주장입니다. 헨리 조지 역시 비슷한 입장이죠. 토지 자체를 공공의 재산으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라, 토지에서 발생하는 이윤을 공공의 재산으로 두자는 겁니다.
그는 “나는 토지를 압수할 것을 제안하지 않습니다. 첫 번째 부당합니다. 두 번째 불필요합니다. 그들(지주)이 계속해서 그들의 토지라고 부르게 하십시오. 토지를 사고, 팔고, 남겨두고, 고안하게 하십시오. 토지를 몰수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윤을 몰수할 필요가 있습니다”고 말했죠.
토지의 소유권은 크게 3가지로 구성됩니다. 사용권과 처분권, 그리고 수익권이죠. 헨리 조지는 사용권과 처분권에는 제한을 두자고 하지 않습니다. 토지를 어떻게 사용하고, 누구에게 팔고 또 주는지는 알아서 하라는 의미죠. 다만 수익권에는 제한을 둡니다. 토지로 얻은 불로소득의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환수하자는 거죠.
헨리 조지의 사상에서 출발한 토지공개념. 사실 이번 대통령 개헌안에 포함돼서 이슈가 시작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헌법에는 이미 토지공개념의 이론이 담겨 있습니다.
‘토지공개념’이라는 용어는 박정희 정부 시절 처음 도입됐습니다.
1977년 8월 3일 제4공화국 당시 신형식 건설부 장관이 “우리나라와 같이 좁은 땅덩어리 안에서 토지의 절대적 사유물이란 존재하기 어려우며 주택용 토지와 일반농민의 농경지를 제외한 토지에 대해서는 공개념의 도입이 필요하다”고 발언했죠.
노태우 정부 들어서는 한발 더 나아갑니다. 일명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한 거죠.
1980년대 말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폭등했습니다. 특히 각종 개발 사업이 진행되면서 그 주변 토지의 가격이 크게 올랐죠. 토지 가격 상승의 이득은 모두 토지주에게 향했습니다. 빈부격차가 커진 건 당연했죠. 당시 토지소유자 상위 5%가 전국 사유지의 65.2%를 가지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법안이 바로 택지소유상한제와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입니다. 급진적인 규제책이었지만 부동산 시장 안정화가 급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제정을 밀어붙였죠.
결과적으로 토지공개념 3법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국민들의 반발이 워낙 심했던 데다 각종 문제점도 많았던 탓입니다.
토지초과이득세는 1994년 헌법불합치 결정이 났습니다. 징수방법과 과세기간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토지초과이득세 납부 여부와 금액이 결정되는 난점이 있었기 때문이죠. 양도세와의 이중과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점도 문제가 됐습니다.
택지소유상한제는 조세를 통한 간접적 규제가 아닌 직접적인 면적 규제로 시장 기능을 왜곡했다는 이유에서 1999년 위헌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개발이익환수제는 살아남았지만, 규제 완화와 강화를 반복하며 보완을 거친 끝에 존재감이 미미해졌습니다.
이후 2003년 노무현 정부에서도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해 종합부동산세와 주택거래허가제를 도입했습니다.
자, 사실상 1980년대 이후 우리 헌법에 쭉 존재해 왔던 토지공개념 관련 조항. 그런데도 이번 대통령 개헌안에 토지공개념이 명시됐다는 점이 논란을 불러오는 이유는 뭘까요.
한국의 땅값은 다른 나라들보다 비쌉니다. 2015년을 기준으로 한국의 토지가격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4.2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죠.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일본(2.2배)보다도 2배 가까이 높은 수준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결국 높은 부동산 가격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고 봅니다. 사회 갈등의 주 원인인 소득 불평등, 낮은 혼인율과 출산율 등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부동산 가격을 잡는 데부터 시작된다고 여기는 거죠.
헌법에 토지공개념이 명시된다면 정부가 앞으로 보유세를 인상하거나 시세차익, 임대차익을 추가로 규제할 때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줄 수 있습니다. 노태우 정부의 토지공개념 3법이나 노무현 정부의 종합부동산세가 겪었던 위헌, 헌법불합치 등의 문제를 피할 수 있는 거죠.
토지공개념의 헌법 명시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분명한 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중복 법안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토지공개념은 사유재산권 보호를 명시한 헌법 23조 ‘재산권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122조에는 ‘국토의 효율적 이용을 위해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해 제한과 의무를 과할 수 있다’고 돼 있죠.
또 개별법에도 재산권의 권리 남용 제한과 종합부동산세·개발제한구역 등의 조항이 있습니다. 가뜩이나 재산권 행사에 많은 제약이 있는데 그것도 모자라 토지까지 콕 집어 헌법에 명기하는 것은 사유재산권에 대한 국가권력의 과도한 침해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두 번째는 사유재산권 침해와 시장경제의 문제입니다.
청와대는 ‘소득 격차, 빈곤의 대물림, 중산층 붕괴’ 등 양극화를 토지공개념 도입의 이유로 들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병폐 해소가 아무리 중요해도 대한민국 경제질서의 근간인 사유재산권과 시장경제보다 먼저일 수는 없다는 겁니다.
헌법 23조에는 ‘모든 국민의 재산권을 인정한다’고 규정돼 있습니다. 헌법 119조는 자유경제 시장질서를 규정하고 있죠.
세금확충을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토지공개념이 개헌안에 포함된 것은 세금을 보다 안정적으로 걷기 위한 편법이라는 주장이죠. 올해부터 도입된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와 부활 가능성이 있는 택지소유상한제와 토지초과이득세법으로 이미 상당한 세금을 쉽게 걷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 개헌안이 헌법으로 확정되면 이들 법안으로 개발이익에 대한 이익환수가 더 쉬워집니다.
일부 부동산 업계의 관계자들이 “토지공개념이 헌법에 명문화 되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 등 토지를 이용해 부의 가치실현 중 상당 부분을 세금으로 걷어 들일 수 있다”,“일각에서 제기되는 정부의 세제강화를 위한 포석으로 받아들이는 시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들은 어떨까요?
토지공개념을 도입한 국가 중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불리는 대만의 경우 ‘평균지권’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습니다.
토지는 전 국민의 소유이므로 국민이 골고루 보유하고, 특정인이 과하게 소유하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평균지권에는 4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모든 토지의 가격을 정부가 매긴다는 ‘규정지가’, 토지가격에 따라 세금을 징수하는 ‘조가징세’, 토지소유자의 신고가격이 규정지가의 상·하한 20%를 벗어나면 정부가 이를 매수하는 ‘조가수매’. 그리고 지가가 별다른 노력 없이 높아지면 그 가치만큼을 공공에 귀속하고 상승분에 토지증가세를 부과하는 ‘장가귀공’ 입니다.
스페인 헌법에서도 토지공개념의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국민의 적절한 주거권을 보장하기 위해 투기적인 토지사용에 규제가 필요하다고 규정했죠.
그 외에도 홍콩·싱가포르·핀란드·영국 등에서는 토지공공임대제를 적용하고 있습니다. 덴마크·미국 일부 주·뉴질랜드 등에서는 토지가치세와 지대조세제가 헌법에 포함돼 있죠.
토지공개념이 포함된 대통령 개헌안. 청와대는 오는 6월 13일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진행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 등 야당은 청와대가 내놓은 개헌안에 강력하게 반발하는 상황이죠.
개헌과 지방선거 동시투표를 위해 국회가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는 마지노선은 4월 말입니다. 청와대와 국회의 개헌안을 둔 힘겨루기 그리고 그 사이에 낀 토지공개념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정순구·정가람기자 soon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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