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가 7년 만에 정기 논문집을 발간했다. 우리법연구회는 보수 정치권이 “이념 편향 법관 사조직은 해체해야 한다”고 요구하면서 지난 2010년께 와해됐다고 알려졌지만 실상은 명맥을 이어왔던 셈이다. 이 모임이 과거 회장을 지냈던 김명수 대법원장의 개혁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특정 성향 법관들이 사법부를 좌지우지한다는 비판도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16일 대법원 등에 따르면 우리법연구회는 논문집 제7집을 지난해 12월 발간했다. 연구회 해체 논란이 한창이던 2010년 6집을 낸 뒤 7년 만이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9월 취임한 후이기도 하다. 5년마다 논문집을 내는 연구회 관행을 고려하면 7집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에 나왔어야 한다. 연구회에 우호적이지 않았던 당시 정치권과 대법원 분위기를 고려해 늦춘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현직 판사 40여명으로 구성된 우리법연구회는 요즘도 1~2개월마다 정기 세미나를 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임기 1년의 회장·간사도 새로 선출했다. 지난해 회장을 지낸 장철익 서울고법 판사는 “우리법연구회는 특정 이념을 공유하는 법관 사조직도 아니고 국제인권법연구회와도 전혀 상관없는 순수한 학술 모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구회가 해체됐다는 법원 외부 인식을 굳이 바꿀 필요도 없고 또 다른 논란의 확산을 막기 위해 언론 취재를 거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1988년 출범해 올해로 30주년을 맞은 우리법연구회는 노무현 정권 당시 박시환 전 대법관과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 김종훈 전 대법원장 비서실장, 박범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주요 인사를 배출하며 주목받았다. 보수 정치권과 사법부 수뇌부에서 부정적 기류가 강해지자 2010년 연구회원 상당수가 탈퇴했고 이때 와해된 것으로 외부에 알려졌다. 2011년 출범해 현재 법원 내 최대 학술단체(회원 480여명)로 성장한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이라는 주장도 많다. 지난해 논문집이 발간되면서 이런 오류도 바로잡힐 것으로 보인다.
우리법연구회와 인권법연구회는 순수 연구단체를 지향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김 대법원장 취임 이후 우리법연구회와 인권법연구회 회원들이 구상해온 사법개혁은 착착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대법원 산하 법원행정처가 독점하던 법관 인사제도 등 사법행정에 대해 의견을 제시하는 전국법관대표회의의 상설기구화가 대표적이다. 과거 우리법연구회에서 활동했던 한 판사는 “우리법·인권법연구회를 좌편향 이념단체로 보는 시각은 분명 잘못이지만 일선 법관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웠던 사법개혁 방안을 연구하고 목소리를 내온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종혁기자 2juzs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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