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화학무기 사태의 진상조사를 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이 부결됐다.
미국과 러시아가 각각 자국의 입장을 담아 제출한 결의안은 모두 무산됐다. 안보리를 거치면서 오히려 미국과 러시아의 대결 전선이 뚜렷해졌고, 시리아의 군사적 위기감은 한층 고조된 양상이다.
안보리는 10일(현지시간)오후 뉴욕 유엔본부에서 회의를 열어 미국이 마련한 ‘시리아 결의안’ 표결에 들어갔으나,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했다. 서방이 주도하는 시리아 결의안에 대한 러시아의 거부권 행사는 이번이 12번째다.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 등 5개 상임이사국 가운데 한 곳이라도 반대하면 결의안은 채택되지 않는다.
곧이어 러시아가 제출한 또 다른 ‘시리아 결의안’이 상정되자, 이번에는 미국·영국·프랑스가 일제히 거부권을 행사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주고받으면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공식화한 셈이다. 중국은 미국 주도 결의안에 기권하고, 러시아 주도 결의안엔 찬성표를 던졌다.
미국과 러시아는 겉으로는 한목소리로 화학무기 진상조사를 요구했지만, 그 속내는 달랐다. 미국은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규탄하는 동시에 안보리 차원의 새로운 조사기구를 구성하는 방안을 요구했지만, 러시아는 화학무기 감시기구인 화학무기 금지기구(OPCW) 차원의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니키 헤일리 미 대사는 “미국과 러시아의 결의안은 엇비슷해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다르다”면서 “독립적으로 진행돼야 하는 진상조사단 구성에 러시아가 개입하겠다는 의도”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바실리 네벤자 유엔주재 러시아 대사는 “우리가 마련한 결의안은 진상조사 조작이 가능한 허점을 제거한 것”이라며 “미국이 국제사회를 또다시 오도하고 정면충돌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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