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가 서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주이지만 양식이 귀하던 옛날에는 일종의 사치품이었다. 문헌상 소주는 고려 무왕 때 처음 등장하는데 이때도 왕의 금주령을 다루고 있다. “사람들이 검소할 줄 모르고 소주나 비단 또는 금이나 옥 그릇에 재산을 탕진하니 앞으로 일절 금지한다.” ‘고려사’의 한 토막이다. 소주의 한반도 전래를 두고 여러 학설이 있지만 몽골의 고려 침략 때 유입됐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지금의 소주는 고려·조선 시대의 것과 다르다. 옛날에는 좋은 재료에 시간과 공을 들여 만든 순수 증류주였지만 지금은 주정에다 감미료를 타고 물에 섞은 희석식이다. 현대식 대량 제조 소주는 1924년 우천 장학엽(1903~1985)이 평안도에서 양조회사를 차려 ‘진로(眞露)’라는 상표로 생산한 것이 원조다. 당시 소주의 알코올 도수는 35도로 제법 독했다. 하지만 1965년 곡식으로 술 빚기를 금지한 양곡관리법에 따라 30도로 낮췄다가 1973년 25도로 다시 내렸다. 지금처럼 희석식 소주로 바뀐 것도 이 때다.
진로하이트가 간판 브랜드인 ‘참이슬 후레쉬’의 도수를 17.8도에서 17.2도로 낮춘다고 한다. 2014년 이후 4년 만에 ‘순한 소주 전쟁’의 포문을 다시 연 셈이다. ‘소주=25도’ 등식을 깨고 마의 벽인 20도까지 무너뜨린 장본인이 선두주자 진로였다. 소주의 순도 인하 경쟁은 순하고 약한 술을 찾는 소비자 기호의 반영이지만 장삿속도 있다. 도수가 낮으면 원료인 주정의 비용이 줄어 이익은 늘어난다고 한다. 이유야 어떻든 소주는 독해야 제맛인데 ‘물 탄’ 소주로 시름을 어떻게 달랠까. 주당들이 많이 아쉬워할 것 같다. /권구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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