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기독민주당(CDU)과 자유민주당(FDP)이 지난해 총선에서 340만가구의 유권자 정보를 사들인 정황이 포착됐다.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개인정보가 미국 대선에 무단 도용돼 파문이 일어난 것과 유사한 ‘독일판 페이스북 사태’가 독일 정치권에도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1일(현지시간) 독일 매체인 빌트암존탁은 “기민당과 자민당이 지난해 9월 총선에 앞서 수만유로를 들여 우편물류 업체인 도이체포스트 자회사로부터 유권자들의 개인정보를 매입했다”고 보도했다. 두 정당이 매입한 개인정보에는 성별과 나이, 가족 구성, 교육수준, 소비습관과 차량소유 여부 등 선호 정당을 추측할 수 있는 기타 인구통계학적 정보 100가지 이상의 항목이 포함됐다. 개인 이름은 익명 처리됐다. 도이체포스트는 이들 정보 중 상당수를 독일 당국으로부터 제공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보도가 나오자 기민당과 자민당은 정보매입 사실을 시인하면서도 “독일의 엄격한 정보보호 규칙을 준수했다”고 강조했다고 dpa통신은 전했다. 도이체포스트도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독일 정치권 내의 논란은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좌파당의 앙케 돔샤이트베르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허가 없이 개인정보를 넘겨주는 것은 예외 없이 금지돼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번 논란으로 과거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준 선거기법 중 하나인 ‘마이크로 타기팅(micro targeting)’ 선거운동에 대한 감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암스테르담대의 발라즈 보도연구팀은 “유럽과 미국 등의 엄격한 법률에 따라 소비자들은 상업적 광고의 왜곡과 거짓으로부터 보호를 받지만 유권자들은 정치적 광고로부터 보호 받기 어렵다”면서 “감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최근 미국에서는 2016년 대선 당시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 진영을 도운 영국 데이터 분석회사 ‘케임브리지애널리티카’에 5,000만명의 페이스북 사용자 정보가 불법 유출됐다는 의혹이 제기돼 선거에서의 유권자 정보 활용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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