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손열음(32·사진) 덕분에 평창대관령음악제(이하 대관령음악제)가 젊어진다. 최근 손열음은 이 음악제의 신임 예술감독으로 위촉됐다. 바이올리니스트 강효(73)와 정명화(74)·정경화(70) 자매에 이은 3대 예술감독이다. 음악제의 기획과 구성을 총괄하는 ‘지휘자’의 연령이 40년 가량 확 낮춰진 것을 놓고 클래식계에서는 벌써 “파격의 인선”이라는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나이를 쏙 빼놓고 전임자의 면면과 비교하기만 해도 다양한 국제 콩쿠르에서 상을 받고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이어온 손열음이 어느새 ‘젊은 거장’으로 인정받고 있음을 단번에 알 수 있다.
현재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손열음은 최근 서울경제신문과 전화로 만나 “부담감이 없다면 새빨간 거짓말일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2011년부터 매년 연주자로 대관령음악제에 참여해 왔고 2016년 이후 부예술감독을 맡기도 했으니 20~30년쯤 뒤에는 훨씬 더 중요한 직책을 맡아 이 음악제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히 하고 있었어요. 제 고향이 강원도 원주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렇게 빨리 기회가 올 줄은 몰랐는데 아직도 기분이 얼떨떨해요.”
손열음은 “정명화·정경화 선생님이 격려해 주시지 않았다면 결코 ‘예술감독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수락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선생님들께서 ‘프랑스는 대통령 나이도 40대 초반인데 네 나이가 뭐가 어리냐’고 힘을 주신 덕분에 겨우 용기를 냈다”고 미소 지었다. 손열음은 지난 2011년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이래 뉴욕필하모닉과 로테르담 필하모닉 등 세계 정상급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추며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다.
지난 2004년 처음 시작된 대관령음악제는 사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목적으로 시작됐다. 매년 7~8월 개최된 이 음악제는 뛰어난 예술감독과 재능 있는 아티스트의 협업으로 기획 취지와는 상관없이 클래식 분야의 세계적인 페스티벌로 우뚝 섰다. 이런 세간의 평가 덕분에 ‘평창동계올림픽이 끝나면 음악제도 덩달아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가뿐히 극복할 수 있었다.
오는 7월25일 개막하는 대관령음악제를 진두지휘할 손열음의 목표는 의외로 소박하고 간단했다. 그는 “무엇보다 클래식에 전문적인 식견이 없는 일반인들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흥겨운 축제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쳤다. “조금씩 클래식의 저변이 확대되고는 있지만 여전히 ‘클래식’이라고 하면 뭔가 교양 있고 우아한 사람들만 즐기는 장르라는 편견이 많잖아요. 제가 거주하는 유럽에서는 학교와 거리, 교회 등 어디서나 자연스럽게 음악회를 접할 수 있는데 아직 우리에겐 먼 나라 얘기나 마찬가지니까요. 공연 시작 전에 제가 직접 무대에 올라가서 짧은 해설도 곁들이고 레퍼토리도 다양하게 구성하면서 최대한 자유롭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려고 합니다.”
손열음에게 ‘음악가로서 가닿고 싶은 꿈’이 무엇인지 묻자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피아니스트가 됐으면 좋겠다”는 모범 답안이 돌아왔다. 그는 “예체능의 기량이란 결국 몸의 상태와 직결되는 것”이라며 “한순간이라도 방심하고 긴장이 풀어지면 금방 티가 나게 마련”이라고 경계했다. “먼 미래를 계획”하기보다 “하루하루 주어진 일상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손열음은 다음달 중순 대구 공연을 위해 잠시 입국한 뒤 5월께 대관령음악제의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나윤석기자 nagija@sedaily.com 사진제공=강태욱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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