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의 감각>은 2015년 벽산희곡상 수상작으로, 2016년 남산예술센터 시즌 프로그램이었던 <곰의 아내>(각색?연출 고선웅) 각색본으로 무대화한 바 있다.
강력사건과 신화를 미묘하게 결합해 독특한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는 고연옥 작가는 <처의 감각>에서 자신의 아이를 버리는 모성과 웅녀신화를 결합한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에 집중하는데, 이때 ‘신화’는 인간의 본성을 탐구하게 하는 도구이자 열쇠다. 작가는 어떤 극한의 고통을 지나 전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에 이르게 된다는 신화의 구조를 차용해 우리 사회에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사건들 속에서 어떤 경계를 넘어버린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누구나 언젠가 그 불행한 사건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는 사건 속 인물이 던지는 질문을 스스로 성찰해보도록 하는 힘을 갖는다.
삼국유사 웅녀 신화를 모티브로 한 이 작품은 ‘인간의 반은 곰’이라는 무의식에서 출발해, 곰의 감각을 잃어버린 지금의 인간이 타자를 끊임없이 약자로 만들고 짓밟는 본성에 대해 경고한다. 어린 시절 곰과 살았던 여자가 곰을 버리고 인간세계로 들어갔지만, 인간들의 잔인한 본성에 환멸을 느끼고 인간세계에서 가장 약한 존재가 되어 다시 곰의 세계로 들어가는 여정을 그린다. 고연옥 작가는 “약자에게 공감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현실에서 약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갈 때, 우린 지금보다 조금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한다.
이렇듯 비현실적인 시공간을 다루고 있지만,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이 작품의 연출은 연극 <손님들>을 통해 고연옥 작가와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는 김정 연출이 맡는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도 특유의 연극성을 여지없이 발휘할 예정이다. 지난 2015년 연극 <베르나르다 알바의 집>으로 데뷔한 젊은 연출가이지만 최근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다. 희곡에 대한 집요한 분석을 바탕으로 강력하게 구축한 캐릭터와 치밀하게 짜인 배우의 움직임, 최소화한 무대로 희곡의 본질을 관객이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연출가 김정은 여자(곰아내)와 남자(남편)가 만나게 되는 인물군상을 통해 자신의 감각을 지키려 몸부림치는 여자와 자신의 감각으로부터 도망치려는 남자를 오버랩시킴으로써, 인간세계를 겪고 곰의 세계로 돌아가려는 여자가 품고 있는 강한 생명력과 근원의 회복을 드러낸다.
이를 위해 여자(곰아내)역에 생애 첫 연극 무대에 도전하는 현대무용가 윤가연이 함께한다. 한껏 꾸며진 배우의 연기가 아닌, 인간의 몸으로 가장 원초적이고 정직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근원의 감각이 관객들에게 전달될 수 있을지 기대해볼 만하다. 또, 남자(남편)역은 지난 2017년 <처의 감각> 낭독공연에 이어 백석광 배우가 맡았다. 백석광 역시 현대무용을 전공한 배우로서 윤가연과 어떤 앙상블을 만들어낼지 주목된다.
이외에 여인숙 주인 역에 이수미, 남자의 여자친구 역에 최희진, 곰아내의 엄마 역에 황순미, 사냥꾼 역에 임영준, 이웃남자 역에 최순진, 역장 역에 권겸민, 남자 회사의 사장 역에 김정화가 캐스팅됐다. 관록 있는 배우들이 만들어가는 안정감 있는 연기는 잔인한 현실을 부각시키며 여자(곰아내)와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또한 이 작품은 독일 하이델베르크 극장 <하이델베르크 희곡축제(Heidelberg Stuckemarkt)>에 공식 초청돼 오는 4월 말 독일어 낭독공연을 연다. 완성된 무대공연이 아닌 희곡 형태로 우리나라 창작희곡의 동시대적인 교류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4월 14일(토) 공연이 끝난 후 이어지는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고연옥 작가, 김정 연출, 출연배우 등과 함께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마련했다. 당일 공연을 관람한 관객이라면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4월 15일(일)에는 1962년 완공된 최초의 현대식 극장인 남산예술센터의 역사와 무대 뒤를 엿볼 수 있는 극장 투어 프로그램 ‘어바웃스테이지(AboutStage)’도 준비됐다. 남산예술센터 누리집에서 사전 신청해 참여할 수 있다.
/정다훈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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