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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춰왔던 고통 이제는…주부들 익명의 #Me too

가정에 털어놓지 못한 피해

"남편 모르게 위로받고 싶다"

블라인드 앱 등에 잇단 게시글





“20대 초반에 당한 성폭행이 최근 계속 떠오르는 주부입니다. 이 사실을 남편한테 말하고 싶지만 저를 보는 남편의 시선이 안 좋아질까 봐 걱정이에요.”

지난 1월29일 서지현 검사가 본인의 성추행 피해 사례를 공개하며 ‘미투(Me too)’ 열풍을 촉발한 지 한 달째인 1일, 익명의 공간에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털어놓는 중년 여성들이 늘고 있다. 대부분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두 익명 처리한 채 피해 사실만을 성토하는 ‘반쪽짜리’ 미투 글이다. 특정인을 실명 공개해 괜한 오해나 가정불화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서다. 다만 익명의 공간에서나마 가슴에 맺힌 응어리를 풀고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어 용기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여성용 건강관리 애플리케이션(앱)인 ‘핑크다이어리’에는 ‘성폭력 피해 발언대’가 개설되면서 익명의 미투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해당 앱은 본인 인증을 거친 여성들만 사용할 수 있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익명으로 과거 성폭력 피해를 밝히고 동병상련을 느끼며 위로를 얻는다.

직장인이 즐겨 찾는 앱인 ‘블라인드’도 주부들이 성폭력 피해를 토로하고 위안을 받는 안식처로 알려져 있다. 블라인드에 글을 올린 30대 여성 A씨는 수년 전 자신이 다니던 회사의 50대 남성 임원이 “같이 자자. 나랑 한 번만 하자”고 끈질기게 추근댔던 상황을 털어놓았다. A씨는 “그런 상황에서도 난 바보같이 예의를 갖춰 거절했다”며 “사회생활 10년 넘게 한 베테랑인데도 모멸감에 손이 덜덜 떨리고 괴로웠다”고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A씨의 고백에 다른 여성들은 “힘들었겠다. 나도 그 마음 이해한다”며 A씨 대처를 탓하지 않고 위로했다. A씨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말하면 화내고 괴로워할 것 같았다”면서 “이런 글 처음 올려보는데 위로 댓글을 보니 눈물이 난다”고 전했다.



성폭력 피해 주부들의 고민에 “남편에게 피해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지 말라”는 조언도 있다. 미숙하게 대처했다가 남편이 도리어 피해자를 탓하는 2차 피해와 가정불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피해자를 위로하는 여성들은 “남편한테는 숨기고 여기서 위로받으라”거나 “남편에게 말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둘 사이에 관계가 틀어질 일이 생기면 그 일을 탓하게 된다”고 조언했다. 남편 반응을 예상할 수 없을 땐 “성추행을 당한 적이 있다는 식으로 가볍게 이야기한 뒤 반응을 살펴보라”는 글도 있었다.

전문가들은 “성폭력 피해 여성은 오래 묻어뒀던 폭력을 직접 말함으로써 주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면서도 “최초 고백은 남편보다는 전문 상담사에게 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성폭력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비난하는 남성도 많다”며 “후진적인 성교육 때문인데 피해 여성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대표는 “성폭력을 사소한 애정 관계로 치부하거나 피해자 탓을 돌리는 모습 자체가 피해자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다”며 “성폭력을 명백한 ‘폭력’으로 규정하는 사회 분위기도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다은·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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