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사라진 밤’(감독 이창희)이 28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언론배급시사회를 통해 선공개됐다. 연기파 배우 김상경, 김강우를 비롯해 김희애가 선택한 작품으로 화제를 모았다. 특히 김희애와 김강우는 각각 2015년 ‘쎄시봉’, ‘간신’ 이후 3년 만에 스크린에 복귀하는 터였다.
이들을 매료시킨 건 2014년 개봉한 원작인 오리올 파울로 감독의 ‘더 바디’였다. ‘사라진 밤’은 원작을 한국적인 정서로 각색해 또 다른 재미를 추구했다. 원작이 ‘복수’를 큰 줄기로 삼았다면, ‘사라진 밤’에서는 사라진 시체를 찾는 과정과 인물들 간의 심리묘사에 치중했다.
영화는 국과수 사체보관실에서 시체가 사라진 후 시체를 쫓는 형사,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남편, 사라진 아내 사이에서 벌어지는 단 하룻밤의 추적 스릴러를 그린다. 이미 생명이 다한 시체가 저절로 깨어날 수 있다는 충격적인 단서를 던져준 후 남편 진한(김강우)이 과거 아내 설희(김희애)를 살해한 배경을 설명, 추리에 혼란을 준다. 진한의 제자이자 내연 관계인 혜진(한지안)까지 끊임없이 의심의 여지를 준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남편으로 드러난다. 권력, 재력, 미모 모두 갖춘 재벌가 회장 설희에게 어리고 잘생긴 남편 진한은 과시용 액세서리에 가까웠다. 걸핏하면 대학교수인 자신의 삶과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설희의 태도에 진한은 회의감을 느꼈다. 그 때 삶을 파고들어온 제자 혜진에 마음이 빼앗겨버렸다. 혜진에게 자신의 아이까지 생기자 진한에게 설희는 벗어나야만 하는 존재였을 터다.
하지만 용의자를 남편으로 몰아가는 정보가 명확해질수록 관객들은 이것이 결정적 단서인지 맥거핀인지 오히려 더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그런 면에서 ‘사라진 밤’은 단촐한 등장인물로도 관객과의 심리게임이 치밀하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국과수다. 사체보관실과 취조실, 복도 등을 미로처럼 구현해 폐쇄된 밀실이 주는 공포감과 긴장감을 극대화시켰다. 사체보관실을 비추면서는 설희가 사라진 묘한 미스터리함을 주고 취조실, 복도에서는 진한과 형사 중식(김상경)의 한 치의 물러섬 없는 팽팽한 기싸움을 전한다.
‘사라진 밤’은 배우들이 순간순간 연극적인 톤으로 연기를 한다. 계속된 좁은 공간이 가질 수 있는 한계인 ‘지루함’을 떨치려는 노력인데, 덕분에 긴장감이 충분히 전달돼 성공적인 계산법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김상경, 김강우, 김희애의 열연은 역시나 의심의 여지가 없다.
가장 흥미로운 건 김상경의 느슨하고 뺀질한 코믹 형사로의 변신이다. ‘살인의 추억’ ‘몽타주’ ‘살인의뢰’ 등 수많은 형사 역을 맡았지만, 이번에는 새로운 형사 캐릭터를 선보인다. 첫 등장부터 허술하고 의뭉스러워 보이다가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벌처럼 찌를 줄 아는 냉철함을 보인다. 김상경의 허술함을 향한 치밀한 디테일의 흔적이 보인다.
김강우는 줄곧 빈틈없고 날 서있는 진한으로 분해 집중도 높은 연기를 보여준다. 김희애는 “가성비가 좋았다”고 자평한 만큼,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던 분량임에도 강렬한 아우라로 첫 스릴러 도전에 성공했다. 진한의 자존심을 깎거나 과도한 집착을 보일 때는 ‘나를 찾아줘’의 로자먼드 파이크와 같은 서늘함을 전한다.
“한정된 공간, 한정된 시간에서 모든 신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많이 생각을 하고 재고 찍었다. 그만큼 콘티에도 신경을 썼다”고 밝힌 이창희 감독의 의도가 결국 영화의 촘촘한 완성도에도 반영된 것 같다. 3월 7일 개봉.
/서경스타 한해선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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