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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여는 수요일] 아들과 나란히 밤길을 걸을 땐

이창기 作

(1959년~)





아들과 함께 나란히 밤길을 걷다가 기도원 앞 다리께서 서로 눈이 맞아 달처럼 씨익 웃는다. 너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안쓰럽다거나 어느 새 거칠어진 내 숨소리가 마음 쓰여서만은 아닐 게다. 아마 나란히 걷는 이 밤길이 언젠가 아스라이 멀어져갈 별빛과 이어져 있음을, 그리고 그 새벽에 차마 나누지 못할 서툰 작별의 말을 미리 웃음으로 삭히고 있다는 뜻일 게다. 아들과 나란히 밤길을 걸을 땐, 벙어리인 양, 서로 마주 보며, 많이 웃자.

달처럼 씨익 웃었을 뿐인데, 웃음 속에 이렇게 깊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군요. 세상 많은 사람 중에 아버지와 아들로 만나, 함께 땀 흘려 밤길 걷다가, 아스라한 별빛이 될 것을 잘 알고 있군요. 만나서 기뻤다고, 함께 해서 든든하다고, 헤어질 것 슬프다고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지만, 그 모든 걸 눈빛의 온도만으로 고스란히 전하고 있군요. 아버지와 아들뿐이겠어요. 우리 모두 장구한 우주 역사 속 찰나 인연인걸요. 입안에 맴도는 서툰 자음과 모음 꺼낼 것도 없이 마주 보며 웃자고요.



<시인 반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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