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 바람이 방송계와 대학가로 번지면서 날이 갈수록 파장이 커지고 있다. 유명 남성 배우 J씨의 성추행에 이어 대학 교수가 제자에게 신체접촉을 시도한 사례까지, 피해자들이 그동안 묻어둔 피해 사실을 잇달아 폭로했다.
지난 2013년 방송 스태프로 일했던 20대 초반 여성 A씨는 22일 서울경제신문에 “유명 배우이자 연극 제작자인 J씨가 방송 현장에서 몸을 더듬었다”고 폭로했다. 이어 “J씨가 스태프를 혼자 불러내 강제로 입을 맞추고 가슴과 다리를 만졌다”며 “당황해 도망가려 하자 억지로 붙잡았고 이후에도 수차례 개인 휴대폰으로 사적인 연락을 시도했다”고 밝혔다.
J씨는 A씨가 거절 의사를 내비치자 “네가 싫어 하는 줄 알았으면 안 했을 것”이라며 책임소재를 피해자에게 돌렸다고 A씨는 전했다. A씨는 “상대가 유명 배우라 영향력이 걱정돼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며 “방송국에 알려져도 네 잘못이라는 말을 들을 것 같았다”고 심경을 전했다. 이에 대해 J씨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서도 “여성 스태프를 워낙 챙기다 보니 그런 일이 있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충남 호서대 학부생이었던 B씨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10년 전 자신을 가르친 P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B씨는 2004년 지도교수와 지인들이 함께 모인 술집에서 지도교수가 화장실에서 나오는 B씨의 손목을 잡아끌고 키스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완강히 거부하자 교수가 ‘소리 질러봤자 소용없다. 나랑 모텔에 가자’고 말했다”며 “가까스로 빠져나왔는데 다음날 교수가 전화해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말해달라’고 다시 요청했다”고 주장했다. P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모텔에 가자고 한 것은 아니지만 입맞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피해자에게 정말 미안하고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호서대는 이날 P 교수가 사의를 표명했다고 밝혔다.
묻혀 있던 성폭력 사건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지만 보복을 두려워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이날 각 대학 대학원생 익명 커뮤니티는 “교수님이 잠자리를 갖자고 했다” “부적절한 신체접촉을 했다”는 피해 사례를 인증하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하지만 가해자들이 지도교수·학자·제작자 등 현직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탓에 피해자들 가운데 다수는 보복을 우려해 공론화를 꺼리고 있다. 본지가 만난 피해자들은 사건 발생 후 4~5년 이상 지났음에도 자신들의 신상이 밝혀질까 우려했고 가해자의 실명을 거론하는 것도 두려워했다.
한편 한국작가회의는 미투 가해자로 고발된 고은 시인과 이윤택 연출을 회원에서 제명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작가회의는 “다음달부터 윤리위원회와 성폭력피해자보호대책팀 등을 만들어 성폭력을 비롯한 반사회적 일탈행위를 적극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달에는 동성 감독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이현주 영화감독이 한국영화인조합에서 제명됐다. /신다은·오지현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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