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준비생 윤모(27)씨는 최근 취미생활을 즐기러 도서관에 가는 일이 잦아졌다. 윤씨가 도서관에 가서 하는 취미생활은 책을 읽는 게 아니라 덮는 일이다. 윤씨는 남이 보려고 펼쳐놓은 책의 책장을 덮거나 반듯하게 꽂혀있는 책을 밖으로 빼내 어지러뜨린다.윤씨는 “다른 사람을 괴롭히면서 쾌감을 느낀다”며 “친구들에게는 말하지 못하는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이라고 말했다.
양심의 가책은 있지만 순간의 쾌락을 느낄 수 있는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가 젊은 세대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길티 플레져는 사회 통념상 바람직하다고 보기 힘든 탓에 남에게 당당히 말하기는 부끄러운 취미를 말한다. 중학생들이 볼법한 유치한 만화를 보거나 악평이 자자한 영화만 골라보는 것도 길티 플레져의 한 종류다.
길티 플레져가 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이유는 순간의 죄의식만 극복하면 단시간에 만족감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취업 준비와 회사 적응 등 할 일은 많은 반면 시간은 부족한 20대의 음주량이 다른 연령대에 비해 유난히 높은 것도 길티 플레져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 손애리 삼육대 보건관리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20대의 한 달 평균 음주량은 소주 5.8잔, 맥주 4잔, 소맥 4.2잔, 와인 1.7잔 등 총 15.7잔으로 전 연령대 중 가장 많다. 술자리가 2차, 3차로 이어지는 경우나 음주로 기억을 잃어버리는 블랙아웃 현상도 20대에서 가장 빈번하다.
길티 플레져로 폭식을 선택한 취업준비생 최모씨는 “다이어트 중이지만 한 달에 한두 번은 꼭 배달음식을 2~3개씩 시킨다”며 “어제는 닭발 1인분과 주먹밥 3개, 떡볶이 1인분을 시켰는데 취업 준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가 가끔 이렇게 이성의 끈을 놓으면 기분전환이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길티 플레져가 일시적인 스트레스 해소 역할을 할 수 있지만 지나칠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고강섭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들은 무한경쟁 사회에서 평소 스트레스에 짓눌려 산다”며 “길티 플레져처럼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행동기준에서 이탈했을 때 느끼는 쾌감이 스트레스를 경감시킨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사회적 통념에서 많이 벗어날 경우 남들에게 부정적인 인상을 심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양지윤기자 y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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