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대의 악인이자, 영국 요크 왕조의 마지막 왕좌를 차지했던 비운의 황제, 15세기 영국 장미전쟁 시대의 실존인물인 리처드 3세가 올 한 해 세 편의 각기 다른 연극 무대에서 관객들을 만난다.
리처드 3세는 곱사등에 절름발이 몸으로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인물이지만 왕위 찬탈을 위해 친형은 물론 친족들과 가신들을 모두 숙청하며 권력의 중심에 서는 역사상 보기 드문 인물이다. 특히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리처드 3세를, 원초적이고 본능적인 권력욕에 사로잡혀 몸뿐만 아니라 마음도 불구가 된 악인인 동시에 뛰어난 언변과 유머감각, 탁월한 리더십을 겸비한 인물로 빚어냈다. 이후 리처드 3세에겐 늘 ‘셰익스피어가 창조해낸 가장 매력적인 악인’이라는 찬사 아닌 찬사가 따라다녔다.
올 한 해 펼쳐질 ‘리처드 3세’의 향연은 10년만에 연극 무대로 돌아온 황정민이 포문을 연다. 오는 6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리차드 3세’는 황정민, 정웅인, 김여진 등 스크린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배우들의 연극 복귀작으로, 세 작품 중 가장 충실하게 셰익스피어의 정극을 무대화할 예정이다. 각색을 맡은 한아름 작가는 “권력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 심리와 장애를 가진 사람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 등 지금의 우리가 곱씹어볼 만한 이야기”라며 “셰익스피어 문장의 아름다움과 주제의식을 놓치지 않는데 주안점을 두고 각색했다”고 설명했다.
6월에는 독일과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연극 연출가가 ‘리처드 3세’로 맞대결을 펼친다. 6월15~17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선보이는 ‘리처드 3세’는 지난 2016년 ‘민중의 적’으로 내한했던 독일 연출가 토마스 오스터마이어의 신작이다. 2015년 독일 실험연극의 산실 샤우뷔네에서 초연한 후 아비뇽 페스티벌, 에든버러 페스티벌에 초청, 세계적으로 극찬을 받았던 작품으로 셰익스피어 시대를 연상시키는 반원형 무대와 무채색의 황량한 구조물, 흩날리는 꽃가루가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특히 객석을 넘나드는 배우들의 역동적인 움직임, 천장에 매달린 마이크를 권력의 메타포로 활용하는 연출방식, 극의 긴장감을 더하는 강한 비트의 라이브 드럼 연주가 몰입감을 고조시킬 듯하다. 곱사등에 절름발이인 리처드 3세의 흉측한 몸은 물론 왕좌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는 심리 변화를 신들린듯한 연기력으로 표현해낼 배우는 전작 ‘햄릿’에서 드라마틱한 심리 묘사로 주목받았던 배우 라르스 아이딩어(Lars Eidinger)다.
대미를 장식할 작품은 독특한 미장센과 작품 해석으로 유럽에서 주목받고 있는 프랑스 연출가 장 랑베르-빌드가 국립극단과 함께 선보이는 ‘리처드 3세’(6.29-7.1, 명동예술극장)다. 이 작품의 부제는 ‘충성심의 구속’으로 랑베르-빌드 연출이 자신을 리처드 3세라고 여기는 백색 광대로 등장해 환상 동화의 한 장면 같은 미장센을 선보인다. 지난 2016년 ‘로베르토 쥬코’로 내한했던 랑베르-빌드 연출은 작가이자 연출, 배우, 디자이너인 그만의 무대 미장센으로 빈틈없는 무대를 창조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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