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신영복(1941~2016) 교수 2주기를 맞아 신 교수의 수필 ‘강물의 여행’ 영한 대역본과 평전이 나란히 출간됐다.
김삼웅 신흥무관학교 기념사업회 공동대표는 ‘신영복 평전-시대의 양심’(채륜 펴냄)에서 신 교수를 ‘향나무처럼 살아간 야인’이라고 평한다. 가을에 나뭇가지 끝에 하나 남겨 둔 ‘씨 과일’처럼 ‘석과불식’의 철학을 통해 ‘사람을 키우는 일’과 ‘인간해방’에 평생을 바치며 생명철학자이자 인간해방사상가, 실천형 지식인으로서 자연현상을 인문학으로 환치시키는데 앞장섰다는 의미다.
책은 총 17장에 걸쳐, 일제의 마지막 폭압과 수탈이 이어지던 1941년 경남 의령의 교육자 집안에서 태어나 2년 전 향년 76세로 운명, 2,000여명의 추모객들이 보내는 흠모와 안타까움 속에 치러진 영결식까지, 고인의 삶과 사상을 되짚는다.
서슬 퍼런 검열 속에서도 ‘옥중서한’을 적어 내려간 신 교수에 대해 저자는 “아무리 검열자들이 현미경으로 들여다봐도 용케 글을 밖으로 빼내거나 평범한 듯한 속에 비범한 의미를 담는다”고 회고하며 “글을 쓰지 못하게 막는다고 하여 절필하면 진정한 지식이랄 수 없다”고 덧붙인다.
신영복의 간결한 문장과 아포리즘이 당대인에게 닿을 수 있었던 이유를 저자는 일반 수인들과 어울렸던 옥살이에서 찾는다. 신 교수는 28세에 사형선고를 받고 20년 20일간 무기수로 옥살이를 했다. 옥중에서 신 교수는 “현란한 언어 대신 그들이 쓰는 말을 쓰고 같이 일”을 했고 이 경험이 출감 후 그의 소박한 언어구사나 소탈한 성품 등 ‘변방의식’의 재료가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흔히 긴 옥고를 치르고 나온 피해자들이 자학의 늪에 빠져 정신적으로 묽어지게 되는 데 비해 신영복 선생은 출감 후에도 지식인의 건강성과 엄격성, 정직성을 유지하면서 유연한 사고를 가졌다”며 “자신의 저서에 직접 그림을 그려넣을 정도의 화필, 여기에 ‘민중체’ ‘유배체’ 또는 ‘어깨동무체’라 불리는 독특한 서체 등, 21세기 한국지식인 사회에서는 보기 드문 유형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신 교수를 기리는 또 한 권의 책은 출판사 돌베개가 펴낸 ‘강물의 여행’(Journey of the River)이다. 2003년 돌베개에서 출간한 ‘신영복-청소년이 읽는 우리 수필 01’의 영한 대역본으로, 수록된 52편의 산문은 한국어판의 원제를 그대로 따르되 앞서 영한대역본으로 출간된 ‘청구회의 추억’ 대신 ‘수도꼭지의 경제학’을 수록한 것이 특징이다.
책의 제목은 신 교수의 사상이 주로 ‘강물’에 비유된다는 점, 생전 강의에서 노자의 ‘상선약수’를 자주 인용했다는 점에 착안했다. 신 교수의 강의록을 엮은 ‘담론-신영복의 마지막 강의’ 중에서 신 교수는 ‘연대’를 ‘물처럼 낮은 곳과 하는 것’ ‘잠들지 않는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르는 것’ ‘바다를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정의했고 저서 ‘처음처럼’에서는 “먼 길을 가는 사람의 발걸음은 강물 같아야”하고 “필생의 여정이라면 더구나 강물처럼 흘러가야” 한다고 적었다.
번역을 맡은 조병은 성공회대 교수는 ‘청구회의 추억’ 외에 ‘처음처럼’의 영역서(For the First Time) 등 신 교수의 글을 꾸준히 번역하고 있다. 책의 감수와 서문 집필을 맡은 로저 리처드슨 윈체스터 대학 역사학과 명예교수는 서문에서 “신영복은 한국에서 사상가로, 그 시대 양심의 목소리로, 강압적인 관료주의와 냉혹한 자본주의 그리고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강한 저항으로서 널리 존경받고 있다”며 “시의적절한 번역은 분명 신영복을 서구 사회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라 믿는다”고 적었다. 그는 또 “조국 통일과 ‘새로운 멋진 신세계’의 수립에 대한 그의 열렬한 희망은 오래도록 살아남아 많은 사람들과 그의 조국에 강한 영감을 줄 것”이라며 “넬슨 만델라처럼, 자유를 위한 그의 음성은 결코 멈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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