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이야’ 프로그램북 더 없나요.”
올 초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막을 올린 가족음악극 ‘십이야’ 공연장 앞에 평소에는 볼 수 없던 긴 줄이 생겼다. 프로그램북을 사달라는 아이들의 성화에 부모들이 지갑을 열기 시작하자 매대 위에 놓여있던 수십 권의 프로그램북이 삽시간에 사라졌다. 보통 어린이 공연의 프로그램북은 판매량이 저조해 남은 물량은 창고에 쌓이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어린이들이 셰익스피어의 희극 ‘십이야’의 내용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게끔, 프로그램북을 동화책처럼 꾸민 결과 평소 판매량의 3배를 넘어서며 전량 매진됐다. 세종문화회관 관계자는 “직접 디자인한 아기자기한 캐릭터에 스티커 삽지를 더하고 색칠하기와 선 긋기 등 어린이 관객들이 즐길만한 콘텐츠를 넣었더니 특히 반응이 좋았다”며 “디자인 인력을 대폭 보강하고 전사적인 디자인 전략을 세운 결과가 가시화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내년이면 개관 40주년을 맞는 세종문화회관이 디자인 경영을 통해 젊고 참신한 이미지로 거듭나고 있다.
예술동 앞에 세워진 공사 가림막에 극장 안의 풍경을 담은, 색색의 일러스트를 선보이고 가림막 여백에 누구나 펜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꾸며 시민들과의 소통 공간으로 활용하는가 하면, 티켓을 형상화한 붉은색 이미지로 꾸민 서비스 플라자는 세련되고 감각적인 인테리어로 고객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다.
가장 큰 변화는 2015년 시즌제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 시즌제 도입 당시 세종문화회관은 팝아트 스타일의 홍보물을 제작하며 낡고 딱딱한 이미지 대신 밝고 강렬한 이미지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재기발랄한 디자인의 이미지나 영상이 공개될 때마다 소셜미디어에 숱하게 공유됐고 이는 1년만에 100%에 달하는 패키지 티켓 판매율 신장으로 이어졌다.
오정화 홍보팀장은 “매년 250만명의 시민이 찾는 세종문화회관은 연간 50개 이상의 문화예술사업을 하고 있는데도 사업별 이미지나 메시지가 중구난방이다 보니 브랜드 이미지가 모호하고 인지도도 떨어졌다”며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는 돈화문국악당, 북서울꿈의숲, 삼청각 등 서울 곳곳에 분산된 공연장과 9개 예술단, 전시부터 교육, 컨벤션까지 다양한 사업 영역을 동일한 브랜드 전략으로 통합 관리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세종문화회관은 그래픽 디자인 전문가인 원승락 디자이너를 영입하고 내부 디자인 역량을 강화하도록 조직과 업무를 재편했다. 그 결과 콘텐츠에 밀착한 포스터, 프로그램북, 영상물, 웹 디자인, 공간, 서비스를 일관된 전략에 따라 디자인할 수 있었다. 이 같은 변신에 힘입어 시민 만족도 지수는 2013년 88.4에서 지난해 92.1로 뛰어올랐고, 지난달 제19대 대한민국디자인대상에서 공연예술계 최초로 디자인경영 부문 우수상인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을 거머쥐기도 했다.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은 “공연장의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디자인 경영은 필수지만 전국 1,066곳의 공연장 중 통합 디자인 전략을 갖추고 실행에 옮기는 곳은 세종문화회관뿐”이라며 “디자인을 공연 홍보 도구로 활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공연장의 다양한 서비스 영역에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면 공연을 보든, 공연장 부대 시설을 활용하든 세종문화회관에 대한 전체적인 신뢰도와 만족도를 제고하는 효과가 있다”고 강조했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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