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 기술인으로 정부의 공인을 받은 ‘대한민국명장(名匠)’ 중 전자통신 분야 ‘컴퓨터시스템’ 직종에서 유일한 명장으로 꼽히는 유형근(54)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전자IT미디어공학과 겸임교수.
‘과학기술인이 예우받아야 국가경쟁력이 커진다’는 신념을 지닌 그는 공고를 졸업한 뒤 일찌감치 산업현장에 투신해 주경야독하며 박사학위를 따내면서 현장과 이론을 섭렵한 전문가로 통한다. 기업 연구원으로 근무할 때 ‘고속도로 하이패스 시스템’ 등 다양한 국가 기반 기술을 개발해 지난 2013년 정부로부터 명장으로 선정되는 영예도 안았다. 고용노동부는 산업현장에서 15년 이상 활동한 최고 숙련기술자를 ‘대한민국명장’으로 정하며 현재 선박·자동차·항공기·의료·전자·정보통신·기계·섬유·전기·화공 등 산업, 도자기·보석·자수 등 공예, 요리·제과 등 서비스까지 22개 분야 96개 직종에서 626명이 활동한다. 하지만 국가 명장이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무성해 유 교수를 찾아 그의 인생 스토리와 국가적인 명장 활용방안을 들어봤다.
“부모님이 충남 청양에서 농사를 지으셨는데, 집안이 정말 어려웠어요. 아버지는 ‘인문계고등학교 가서 면직원이 되라’고 하셨는데 저는 전기전자가 좋아 공고를 선택했죠. 열심히 공부해 전자기기 국가기술자격증도 취득했어요. 군대에 다녀온 뒤 1986년 LG전자 컴퓨터사업부 설계실에 입사했는데 영어·독어·일어 문서를 해독하는 데 애로가 컸죠. 여하튼 노트북컴퓨터 메인프로세서를 이용한 자동화 시스템 설계·개발에도 참여하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는 1988년 삼미컴퓨터로 자리를 옮긴 뒤 당시 영국 앨런브래들리사의 RFID(전파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도 무선으로 데이터를 인식) 기술이 신기해 연구를 거듭한 끝에 1988년 서울올림픽 출입통제 시스템 개발에도 역할을 담당한다. 방송통신대 컴퓨터과학과를 다니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1993년에는 피혁 전문기업인 태흥그룹이 ‘정보통신을 키우겠다’고 스카우트를 제안해와 응했다가 IMF 외환위기의 파고를 맞아 졸지에 실업자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남다른 기술경쟁력이 인정받아 이듬해 정보통신공단으로 옮겨 인천국제공항 통합운영 시스템 설계에 참여한다. 공항의 모든 정보를 빅데이터화해 기상청이나 관제탑·항공사·방송국·경찰청·도로공사 등에 보낼 수 있게 된 것도 당시 시스템이 개발됐기 때문이다. 2002년에는 한국심트라 연구소장으로서 한국도로공사의 하이패스 시스템을 개발했다.
2007년에는 직접 정보기술(IT) 업체인 애니스마트를 창업해 주요 은행의 신용카드에 들어가는 전자카드 솔루션을 개발했다. 이때 서울과기대 정보산업공학과 석사과정도 밟고 내친김에 박사과정까지 공부하다가 2012년 9월 겸임교수로 위촉됐다. 2013년에는 박사학위도 받고 ‘대한민국명장’ 반열에도 올랐다.
곡절 많은 인생 스토리에 이어 화제가 명장 활용방안으로 넘어가자 그는 올 5월 거제의 한 조선소에서 발생한 사고 얘기부터 꺼냈다.
“당시 기중기가 쓰려져 12명이 숨지는 안타까운 사고가 났는데 공교롭게도 조선경기가 좋지 않아 ‘안전관리명장’이 명예퇴직한 직후에 벌어졌어요. 그가 없으니까 바로 티가 난 거죠.” 명장이 설계·기술개발·품질제고·원가절감을 통해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데 연구환경도 제대로 조성되지 않고 정부 지원도 크지 않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실제 명장은 특허, 국가기술자격, 전문 분야 근무경력, 전문서 출판, 연구개발(R&D), 국가 기술과 경제 기여도 등의 심사를 거쳐 선정된다. 기술장려금(2,000만원)을 받은 뒤 관련 업체에 근무할 경우에만 월 20만원가량의 ‘명장 수당’을 받는다.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지식을 갖춘 명장은 연구풍토만 갖춰지면 누구보다 신기술 개발과 기술전수 등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며 “명장들이 개발에 집중하고 그 결과물을 4차 산업혁명 플랫폼으로 재탄생시킬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체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이어 “최고 기술력이 사실상 사장되고 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명장의 지식 콘텐츠를 입체화하면 엄청난 가치로 키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연 20조원에 달하는 국가 R&D 자금이 정부 출연 연구원과 대학교수·기업체에 주어지는데 명장에도 문호를 개방해야 한다는 주장도 했다. 명장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관련 회사와 함께 프로젝트를 신청하자고 해도 경영진을 설득하기가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그는 “명장이 개인적으로 국가 R&D 프로젝트에 참여하려면 연구실적 등 조건이 까다로워 전문성을 발휘할 기회가 많지 않다”며 “개인의 아이디어가 상업화로 이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명장이 현장의 최고 숙련기술을 가진 엔지니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정부가 명장을 중학생 진로지도에 활용하는 것에 관해서도 “취지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쓰는 격’이라 아쉽다”고 말했다. 중소벤처기업부·방위사업청·해양수산과학진흥원 핵심기술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정부의 R&D 자금이 효율적으로 집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질책도 따끔하게 했다.
그는 “세금을 투입해 연구개발을 하면 상품화돼 서비스가 이뤄져야 하는데 그냥 연구개발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기업이 과제만 따려고 제안서를 쓰는 경우가 많고 그 돈으로 연명하는 곳도 비일비재하다”고 질타했다.
현장경험이 있는 전문가들이 중심에 서서 평가를 해야 하지만 실제로는 이론에만 밝은 교수들이 ‘수박 겉핥기’ 식으로 진행하는 게 현실이라는 것이다. 그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산업현장교수(고용노동부 주관 총 1,600명)로서 기술지도를 하다 보면 4차 산업혁명 등 미래를 내다보지 않고 당장 먹고살기에만 급급한 곳이 많아 답답하다”며 “중소기업 경영진이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글로벌 신산업 트렌드를 읽고 대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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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년 충남 청양 △1983년 평택공고 졸업 △1986년 LG전자 △1988년 삼미컴퓨터 △1998년 정보통신공단 △2004년 한국방송통신대 컴퓨터과학과 졸업 △2007년 애니스마트 창업 △2009년 서울과학기술대 정보산업학과 석사 △2012년 서울과기대 겸임교수 △2013년 서울과기대 정보산업학과 박사 △2013년 전자통신 분야 ‘컴퓨터시스템’ 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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