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외교정책이 점차 공세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뿐만이 아니더라도 지정학적 특성상 중국과 우리의 이익이 충돌하는 상황들이 앞으로 있을 것입니다.” ( 신범철 국립외교원 교수)
중국이 지난달 31일 ‘한중 관계개선 협의’ 결과에 따라 한국에 대한 사드 보복을 중단하기로 했지만 국민적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이번 일을 통해 중국이 언제든지 우리나라에 대한 경제적·외교적 공세정책을 일방적으로 폈다가 멈추며 ‘길들이기’에 나설 수 있음이 실증됐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5개월여 만에 지난 정부에서부터 불거진 사드 갈등을 응급처치했지만 앞으로 재발 방지를 위한 다각적이고 지속적인 정책대응에 나서야 하는 과제에 직면했다.
한중 간 사드 갈등의 시작부터 해결까지 과정을 면밀히 복습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력 차이를 감안할 때 우리나라가 당장 중국의 일방주의적 외교 강공을 저지하기는 어렵지만 이번 사태의 전말을 찬찬히 살펴보면 갈등의 소지를 애초부터 막거나 최소화할 수 있었다.
◇피해 상황, 갈등 전말 담은 백서 필요=특히 철저한 복습을 위해 중국의 보복 과정과 우리의 대처, 한국의 경제적 피해를 꼼꼼히 담아 분석하는 ‘백서’를 정부 차원에서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드 보복으로 지난 1년여간 대중 교역에서 큰 피해를 본 한 제조업체 임원은 “중국의 불공정행위로 우리가 입은 경제적 피해가 적지 않은데 대략적인 피해 총액으로 뭉뚱그리기보다는 각 분야별, 시간대별로 객관적인 수치와 사례를 종합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번에 얼마나 우리가 당했는지 확실히 알아야 다음에 유사한 상황이 빚어질 때도 그 충격을 예상하고 적절하게 대응전략들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제언은 정부가 사드 갈등의 사후적 봉합의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예방적 차원의 갈등관리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차원의 조언이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도 “이번 한중 사드 갈등과 관계복원 과정을 대외 갈등 발생 시 하나의 중요 사례로 삼을 수 있는 모델로 구축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예방적 전략과 사후 대처가 중요=애초 갈등 자체에 휘말릴 위험을 최소화하는 예방적 차원의 전략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미중 간 패권을 겨루는 게임이 더욱 격화되고 복잡해지는 상황이어서 그 여파가 한반도 게임으로 번질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며 “그런 차원에서 우리 정부가 한반도 문제를 최대한 미중 간의 게임과 분리해 대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만약 한중 간 중요한 사안에 대한 갈등이 발생한다면 초동대응이 매우 중요하다. 한 외교 당국자는 “시진핑 국가주석의 절대권력을 정점에 두고 정책을 결정하는 중국 체제의 특성상 어떤 갈등 사안이 생기면 시 주석 등 상층부에서 특정 방향으로 대응책을 정한 뒤에는 사후에 정책방향을 되돌리는 것이 매우 힘들다”고 전했다.
실제 이번 사드 갈등 과정에서도 고위층에서 한국에 대한 강력한 대응입장을 정한 뒤부터는 이와 관련한 모든 외교채널을 중국 측이 일방적으로 닫아버려 사후적으로는 설득이 지극히 어려웠다고 외교 당국자들은 설명했다.
◇대중외교 지렛대를 구축해야=일단 갈등이 발생한 뒤에는 우리의 협상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외교적 기반을 확충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미 ‘빅2’로 성장한 중국을 우리 국력만으로 일대일 대응하기는 어려운 만큼 이를 뒷받침할 동맹국과 국제여론의 지원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미동맹을 굳건히 하는 게 필수적이다. 청와대의 또 다른 관계자도 “이번 한중관계 회복 결정 과정에서 백악관 측의 도움이 상당히 컸다”며 “한미동맹의 굳건한 기반이 이번 사드 갈등 봉인의 기반이 됐다”고 전했다. 이 같은 측면에서 그동안 우리 정부가 중국의 압박에 흔들려 사드 배치를 놓고 갈팡질팡하는 등 한미관계의 틈을 스스로 보여준 점이 패착이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와 함께 학계 등을 활용해 장외에서 국제여론전을 강력하게 펼칠 필요가 있다. 이번 사드 보복처럼 중국이 개입해 불공정 무역행위를 조장해놓고 민간이 자율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오리발’을 내밀 경우가 잦아질 수 있다.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무역 질서의 심대한 위협으로 보고 학술계·경제계를 중심으로 국제적인 연구와 대응방안 마련을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민병권기자 newsroo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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